목요일, 9월 20, 2018
Home > AUDIO NOTES > Sony ST-A30L 튜너에 얽혀 있는 과거 이야기

Sony ST-A30L 튜너에 얽혀 있는 과거 이야기

글쓴이 : SOONDORI

IF IC LA1231N, MPX uPC1161C(=인켈 TD2010 IC 호환품), 세라믹필터 3개, MPX에서 곧바로 OUTPUT 출력된다. 스펙은, 3련 바리콘을 쓴 그냥 그렇고 그러한 수준이고 모양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레이아웃이나 다소 미려하지않은 부분이 눈에 띈다. 아무래도 저가형이다.

회로도를 보니 더 더욱 그러려니…

[ 그림확대 ]
 SONY_A30L.jpg

[ 서비스메뉴얼 ]
 sony_st-a30l.pdf

허거걱!! Made in Korea라고 적혀있다!

오호… 서비스매뉴얼 프린팅 일자는 1979년으로 표기되어 있으니까 아무래도 1977~1979년 사이에 개발을 했단 이야기겠고 어떤 국내회사가 주문에 따라 OEM/ODM 생산했을 것이다. 어딜까?

화신소니.

친일파 박흥식이 세운 화신백화점, 화신소니. 소니제품 판매 목적으로 합작된 회사로 다양한 TV, 오디오(화신소니 CA-850 인티, CT-870 튜너 등)를 수입하거나 조립한 적이 있었으니 일본 소니의 도움을 받아 해외수출형 모델을 만들지못할 이유는 없다고 추정된다.

(화신소니 CA-850, 출처 : http://elu.co.kr/data/file/o_ku/1845882915_dfe33d3f_sony_in-ca-850-1.jpg)

(화신소니 CT-650, 출처 : http://www.enjoyaudio.com/zbxe/files/attach/images/1126934/819/147/001/P1010596.jpg)

이들 중 박흥식의 몰락은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였다. 평남 용강에서 태어난 박씨는 1926년 신문용지 수입업체인 선일지물, 화신백화점을 설립하면서 기업가로 변신해 막대한 부를 손에 쥐었다. 그는 당시 ‘금박명함’을 뿌려 일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화신은 해방 이후 일본 소니와 손잡고 전자업에 진출하면서 최정상에 올랐지만, 후발주자인 삼성과 LG의 연합군에 밀린 데다 막대한 투자를 감행한 섬유업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끝내 몰락했다. (경향신문, 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102161528131&mode=view)


『신념 밑에 성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력 60년의 화신이 대단한’ 변을 앓았지만 전 직원이 꼭 재건시켜야 된다는 신념과 각오에 차 있습니다』화신전자의 법정관리인(경영담당) 으로 화신재건의 중책을 맡은 김은호씨(53).『쉬운 일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면 불가능한것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협조를 바랍니다』

20대 후반에 화신에 몸 담은지 25년만인 작년 3월 당시 화신산업전무로 있던 김씨는「내 사업」을 하기 위해 일단 화신을 떠났었다.

『작년 10월, 화신이 불행을 당했을 때 해외에 있었습니다. 귀국 후 박전식 사장으로부터 화신을 말아서 수습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망설였지요. 그러나 화신은 제가 25년 동안 몸담은 곳이며 총업원과 대리점, 그에 딸린 화신가족을 다 합치면 5만명이 넘습니다 .또 화신제품을 사주신 고객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도 꼭 재건돼야 되겠다 생각하여 미력이나마 바치기로 한 것입니다

현재 은행부채가 2백60억원(화신전자 화신산업 화신전기 등 3사합계)쯤 있으나 신신백화점의 매각대금 1백억원을 받을게 있고 화신전기는 자산이 부채보다 많으니 경영정상화에 큰 어려옴은 없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는 화신의 본포인 화신산업은 그대로 살리면서 화신을 재건하겠다고 다짐한다. 김씨는 15.7%(약3억3천만원)의 지분을 가진 일본 소니와의 협상도 무난할 것으로 예상했다.

소니로서도 자국 내에 시설이 없는 흑백TV의 공급 등으로 화신을 필요로 하고있으며 화신도 기술향상 등을 위해 소니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상호보완성을 강조한다.

『전자경기가 좋지 앉습니까? 타이밍이 좋은 거지요 ,그리고 흩어졌던 직원들도 속속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고 또 경영정상화 될 때까진 대외부채의 동결 등 폐를 끼치겠지만 사력 20년의 노포「화신」을 회생시킨다는 뜻에서 너그럽게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도 최선을 다해 사회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읍니다.』김씨는 화신전자를 7월 중순에는 의욕에 찬 점검을 시작했다<박병석기자>

(출처: 중앙일보, 1981.07.07, http://news.joins.com/article/1573169)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