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10월 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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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AM/FM 방송의 역사 #3

글쓴이 : SOONDORI

* 2010년 방송통신위원회/한국전파진흥원의 ‘AM 라디오 및 표준 FM 라디오 방송주파수 이용 개선방안(방송통신위원회 정책 2010-02)’ 연구문서의 내용 중 과거 우리나라 방송 태동기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소중한 내용들이 있어 몇 편으로 나누어 복사 게시합니다. 해당 연구논문 PDF 파일은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1935년에는 경성방송국이 ‘경성중앙방송국’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부산방송국이 첫 지방방송국으로 개국된다. 이후, 함흥과 이리, 대구, 청진, 광주, 목포, 대전, 원산, 신의주, 해주 등의 지방방송국이 설립되는 등, 1945년까지 전국 주요도시에 방송망이 형성된다. 제2방송이 시작되면서 한국인을 위한 방송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였으나 1937년 중일전쟁 이 후, 총독부의 간섭과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한국인을 징병과 징용으로 동원하기 위한 독려방송 등의 전쟁의 도구로 라디오가 이용된다. 결국, 일본의 패망이 다가오면서 제2방송은 정파되고 만다.

광복 이후, 경성중앙방송국은 한동안 좌익과 우익의 주도권 다툼으로 인하여 혼란을 겪게 되지만, 1945년 9월 미국 애틀랜타 시에서 개최된 국제무선통신회의에서 호출부호 <HL>을 할당받게 되고 같은 해, 9월 15일 미군정의 정식접수와 감독 아래 완전하게 한국인의 손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 표제부사진과 글 출처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항복 선언이 경성중앙방송국을 통해 전국에 중계됐다. 9월 14일 주한미군 사령부가 조선총독부로부터 인체의 행정권과 경성중앙방송국의 운영권을 넘겨받으면서 모든 공식 문서에서 경성을 서울로 바뀌었고 경성중앙방송국 역시 서울중앙방송국으로 개칭했다. 9월 15일 미 군정이 공식적으로 서울중앙방송국을 접수한 후 방송 기구의 미국식 개편을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일제치하의 사전 검열에서 사후 검열로 획기적인 변화와 더불어 직제 및 프로그램 등에서 많은 것이 바뀌었으며 방송 기술과 포맷 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뤘다. ((http://journal.kobeta.com)

비록, 이 시기에 주요 방송 업무 부처는 미군정으로 이관되고 기술업무부문만 이 체신부의 관장이 되면서 이원체계로 진행되지만 이전의 간섭과 탄압 없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구적인 방송형태로 변신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결국, 해방 후 전래의 ‘일본적인 것’에서 이제 막 새롭게 등장한 ‘미국적인 것’인 현대적인 방송의 모습으로 재구성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임종수, 2004).

1948년 8월 15일, 공식적인 한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한국의 방송은 완전한 독립된 방송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방송사업의 국유화에 따라서 방송국도 대한민국 공보처가 담당하는 부처가 되었다. 국영방송으로서 KBS의 시작은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으며, 비로소 독립국가의 방송으로 대외홍보와 국민계도 등의 국가적 차원의 역할과 방송문화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지만 6.25 전쟁의 발발을 통해 방송 기능과 역할을 원점으로 돌려버리고 만다.

전시동안 서울중앙방송국이 부산방송국으로 이관되어 운영되는 등 전쟁의 상황에 따라 역할이나 기능이 변경되었다. 휴전 후, 사회적으로 안정이 지속되면서 라디오방송 사업에서도 민간 방송국이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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