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0월 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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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AM/FM 방송의 역사 #1

글쓴이 : SOONDORI

* 2010년 방송통신위원회/한국전파진흥원의 ‘AM 라디오 및 표준 FM 라디오 방송주파수 이용 개선방안(방송통신위원회 정책 2010-02)’ 연구문서의 내용 중 과거 우리나라 방송 태동기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소중한 내용들이 있어 몇 편으로 나누어 복사 게시합니다. 해당 연구논문 PDF 파일은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라디오방송은 전파를 이용하여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신속성과 광파성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성들은 라디오를 전시나 재난, 재해, 고립지역 등에 정보 전달 및 비사용 전달 매체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라디오 방송의 전파는 국민 모두의 재산으로 공공성과 공익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오락매체로써의 특성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타 미디어에 비하여 구입비용이 저렴하며 청취자의 참여가 용이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매체이용에 있어서 청각만이 필요하기 때문에 라디오 청취를 하면서 다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라디오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라 하겠다.

한편, 라디오가 국내에 도입된 배경은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라디오방송국을 개설하던 1923년, 일본 정부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여 구체적으로 방송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1) 일본 본국에서 방송사업이 진행되면서 당시 조선을 강제적으로 통치하고 있던 조선총독부도 1924년 2월에 방송 무선전화의 조사연구와 함께 라디오 지식을 보급하기 위한 ‘실험용방송 무선전화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총독부 산하 체신부 직원들을 일본으로 보내어 방송제도의 조사 및 무선 기술을 배우게 하였고, 일본 무선기기 제조회사들로부터 무선전화 송수신기를 구입함과 동시에 외국제수신기 등을 구입하여 1924년 경성(지금의 서울)에 들어오게 된다.

이후, 국내에서 방송 무선기술에 대한 연구 실험이 진행되었고 같은 해, 7월 방송 무선전화의 실험전파를 발사하는데 성공하였다. 실험에 사용된 송신기의 출력은 50w, 공중선 전력은 10w, 전파의 파장은 395w(760㎑)였으며, 전파의 도달거리는 인천까지였다. 이 실험방송이 성공하게 되면서 일반인들의 방송에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체신국은 일주일에 화 목, 금, 일요 일의 주 4번 정규방송을 실시하였는데 목요일과 일요일 일부 시간은 한국어로 방송되었고 그 외의 시간은 일본어로 방송되었다. 방송시간은 저녁 7시부터 저녁 10시 사이였으며, 일기예보, 시보, 강연, 동화, 가요 등이 주로 방송되었다.

실험방송이 성공하고 정규방송이 진행됨에 따라 방송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더욱 더 높아지고 방송 사업에 진출하고자 하는 11개 단체가 방송국 허가 신청을 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정부는 방송 사업에 대한 기본정책으로 방송사업 허가를 시청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을 합쳐 하나의 법인을 구성하고 비영리적인 사업을 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었다. 이에 신청 단체들은 1926년 2월 발기인 총회의를 개최하고 4월 <경성방송국> 창립 준비 위원회를 개최하려 하였으나 일본방송협의 승인이 없다는 이유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같은 해 11월 조선총독부가 <사단법인 경성방송국 설립 및 방송 무선전화 시설>의 설치허가를 내려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기관 <경성방송국>이 설립되었으나, 순수한 민간주도가 아닌 식민지 통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한 조선총독부 주도하의 설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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