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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의 역사 #1

글쓴이 : SOONDORI

1945년 10월, 마사루 이부카(Masaru Ibuka, 당시 38세, 와세다대학)는 전쟁통에 폐허가 되어버린 도쿄 ‘시로키야백화점’의 구내교환시설이 있던 작은 공간에서 동경전파연구소(Tokyo Telecommunications Research Institute)를 설립한다.

이후 라디오 수리와 회수 군용장비를 수정하여 단파청취가 가능한 수신어댑터를 제작해서 파는 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아사이 신문이 이부카의 어뎁터에 관한 소개기사를 내보냈는데 우연히 그것을 본 아키오 모리타(Akio Morita, 오사카대학, 당시 26세로 전쟁 중 Wartime Research Committee에서 이부카와 함께 근무, 훗날 소니 회장)가 연락을 취했고 곧바로 합류하였다.

종전 직후의 일본은 군수공장 폐쇄 때문에 잠시 동안 전력이 남아도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그 점에 착안한 이부카는 최초 개발제품인 전기밥솥을 만들었으나 쌀이 귀하던 시절에, 성능미흡까지 겹쳐 실패하였다.

(나무밥솥에 알루미늄 전극을. 출처 : https://c1.staticflickr.com/8/7447/9030443989_664d29b4ef_b.jpg)

1947년에는 큰 자본금을 마련하여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Tokyo Telecommunications Engineering Corporation)를 설립하였다. 사장은 종전 후 내각의 교육부장관을 역임했던 그의 장인 Tamon Maeda가 맡았다. 이때 전기메트를 개발, 생산하였는데 나름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후 NHK의 방송설비 특히, 군용장비를 수정해서 릴레이-리시버를 제작하는 등 NHK의 무선설비 재건에도 참여하였다. 무선에 대한 이부카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술적 강점은 훗날 SONY를 만들어 낸 트랜지스터 라디오 개발로 이어진다.

* 자본금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던 부호 노무라씨에게서 도움을 받았고 하는데 3만 엔을 빌리러갔다가 64만 엔을 얻어왔더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64만 엔은 1961년 환율 350원/엔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2.2억 원이다. 60년대 우리나라 80kg 쌀 한 가마니 가격이 3.86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출처 : http://edge.alluremedia.com.au/m/g/2010/09/sony-electric-cushion.jpg)

생각해보니 초창기의 소니 즉, TTEC를 발전하게 만든 요인들을 다음 몇 가지로 축약할 수 있겠다.

우선, 종전 후 혼란기에 자리를  못잡은 우수한 엔지니어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파괴되었거나 수리가 필요한 전자장비들이 많았고 이부카의 배경에 의해 정부 또는 공공기관과의 거래도 가능했다. 이에 더하여 이부카가 풍부한 아이디어와 비전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점, 그를 따르는 소속 엔지니어들의 열의가 충만했다는 점 그리고 적절한 역할분담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판단된다.

* 전기방석을 만들고 있는 과정에서도 이부카는 TV개발, 모사전송 신문 개발, 다중통신 구현 등 당시로서는 한참을 앞서나간 아이디어들을 상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른쪽 두 번째가 이부카, 첫 번째가 모리타)

* 이상, Sony.net을 참조하고 기타 문서를 종합, 간략하게 의역하였습니다.(원본 : https://www.sony.net/SonyInfo/CorporateInfo/History/SonyHistory/1-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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