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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소니 CT-870 튜너, 대한민국 오디오 세상의 전설

글쓴이 : SOONDORI

 “고맙습니다” 아래는 2021년 7월 16일, 김동오 님께서 제공해주신 화신 소니 CT-870 아날로그 튜너 실물 사진들.

지금은 사라진 화신백화점의 ‘화신(Whashin)’ 꼬리표가 붙어 있는 화신전자주식회사의 CT-650, CT-850, CT-870은 우리나라 오디오 세상 초기에 소개된 튜너라는 점에서 큰 역사적 가치가 있다. CT-650/CT-850은 아날로그 미터를, CT-870은 CT-850를 베이스로 디지털적 느낌의 LED 미터를 가미하였다.

(DNA가 같다고 추정한 SONY ST-A3A 스펙 기준) 실용감도 1.9uV, 50dB Quieting Sensitivity 43uV@Stereo, S/N 65dB@Stereo, THD 0.3%@Stereo,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 지금 시각으로 보면 별것 아니지만 맑게 빛나는 이상한 전구, LED가 신선했던 시절에는 나름 상업적 가치가 있었을 듯)

(▲ 없는 것 빼고 있을 것은 다 있다. 디엠퍼시스 선택, 전압 선택, Variable/Fixed 출력 선택)

대략 소니 ST-A3**/ST-A4**/ST-A5** 시리즈의 아류작인 듯. 참고로 Sony ST-A3L은 국내에서 제조되었다.

(▲ SONY ST-A3A 튜너. 스테레오 표시부가 다른 ST-S3L, 프론트 상면 마감이 다른 ST-A4/ST-A5도 큰 틀 레이아웃은 매우 비슷하다. 출처 : https://www.usaudiomart.com/…/images/2182974/)

(▲ 1979년 SONY 카탈로그에서. 출처 : https://www.hifiengine.com/manual_library/sony/product-range.shtml)

(▲ SONY ST-A3A와 TA-F3A 인티앰프. 출처 : https://www.canuckaudiomart.com/details/649649559-1978-sony-st-a3a-stereo-amfm-tuner-component-recently-serviced/)

(▲ 조작기가 간소화된 화신소니 CT-650. CA-650 인티앰프, TD-650 카세트 데크가 제 짝. 출처 : https://www.soriaudio.com/…/20130126113936.jpg)

(▲ 화신소니 CT-850. CA-850 인티앰프, TD-850 카세트 데크가 제 짝. 출처 : https://www.soriaudio.com/…/441b35b972ff85dcbe357a0021eb374c.jpg)

CT-870과 수출형 ST-A3L(CT-850 유사)의 내부는 대동소이할 듯. 크게 다를 이유가 있을지?

(▲ 쪼가리 단편이라도 긁어모으려 ‘인터넷 거지’를 자처하면서… 출처 : https://www.ebay.com/itm/353372697657)

(▲ FM 3련, AM 2련 프론트엔드)

(▲ HA1137W IF IC + 복동조 직교검파 코일 + 초록색 사각 위상변환 코일)

(▲▼ HA1196 MPX IC + TOKO社 LPF)

 

(▲ HA1197 AM IC + TOKO 코일. 그 시절에는 AM이 상당히 소중했을 것이니 나름 성의껏 만들었을 듯)

(▲ 기기 밖에도 연번이 있고 안쪽에도 연번이 있다. 뭔가 철저한 통제가 필요했던 상황으로 이해되는데… WHY?)

(▲ 우측 전원선은… 누군가에 의해 재배선 된 상태)

(▲ 맨 우측 전구는 얼렁뚱땅 교환한 상태. 그 과정에서 고무 고정부를 훼손하였으며…)

돈이 있어도 못 사는 이런 부류의 튜너는 소리가 아니라 역사적 가치를 더한 감성으로 듣는 게 좋을 듯하다.

* 관련 글 : SONY STR-2800L 리시버, Made In Korea


○ 이들 중 박흥식의 몰락은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였다. 평남 용강에서 태어난 박씨는 1926년 신문용지 수입업체인 선일지물, 화신백화점을 설립하면서 기업가로 변신해 막대한 부를 손에 쥐었다. 그는 당시 ‘금박명함’을 뿌려 일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화신은 해방 이후 일본 소니와 손잡고 전자업에 진출하면서 최정상에 올랐지만, 후발주자인 삼성과 LG의 연합군에 밀린 데다 막대한 투자를 감행한 섬유업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끝내 몰락했다. (주간경향, 2011.02.22, 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102161528131&mode=view)

○ 『신념 밑에 성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력 60년의 화신이 대단한’ 변을 앓았지만 전 직원이 꼭 재건시켜야 된다는 신념과 각오에 차 있습니다』화신전자의 법정관리인(경영담당) 으로 화신재건의 중책을 맡은 김은호씨(53).『쉬운 일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면 불가능한것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협조를 바랍니다』

20대 후반에 화신에 몸 담은지 25년만인 작년 3월 당시 화신산업전무로 있던 김씨는「내 사업」을 하기 위해 일단 화신을 떠났었다.

『작년 10월, 화신이 불행을 당했을 때 해외에 있었습니다. 귀국 후 박전식 사장으로부터 화신을 말아서 수습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망설였지요. 그러나 화신은 제가 25년 동안 몸담은 곳이며 총업원과 대리점, 그에 딸린 화신가족을 다 합치면 5만명이 넘습니다 .또 화신제품을 사주신 고객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도 꼭 재건돼야 되겠다 생각하여 미력이나마 바치기로 한 것입니다

현재 은행부채가 2백60억원(화신전자 화신산업 화신전기 등 3사합계)쯤 있으나 신신백화점의 매각대금 1백억원을 받을게 있고 화신전기는 자산이 부채보다 많으니 경영정상화에 큰 어려옴은 없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는 화신의 본포인 화신산업은 그대로 살리면서 화신을 재건하겠다고 다짐한다. 김씨는 15.7%(약3억3천만원)의 지분을 가진 일본 소니와의 협상도 무난할 것으로 예상했다.

소니로서도 자국 내에 시설이 없는 흑백TV의 공급 등으로 화신을 필요로 하고있으며 화신도 기술향상 등을 위해 소니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상호보완성을 강조한다.

『전자경기가 좋지 앉습니까? 타이밍이 좋은 거지요 ,그리고 흩어졌던 직원들도 속속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고 또 경영정상화 될 때까진 대외부채의 동결 등 폐를 끼치겠지만 사력 20년의 노포「화신」을 회생시킨다는 뜻에서 너그럽게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도 최선을 다해 사회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읍니다.』김씨는 화신전자를 7월 중순에는 의욕에 찬 점검을 시작했다<박병석기자> (출처: 중앙일보, 1981.07.07, http://news.joins.com/article/1573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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