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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음전자공업주식회사 엄익정 대표에 관한 가벼운 대화

글쓴이 : SOONDORI

어찌하여 1990년경 이후, 엄익정 대표의 활동 흔적이 없을까? 그리고 1975년의 인켈은 서음전자 탄생에 어떤 입장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 두 가지가 궁금했다.

* 관련 글 : 서음전자와 미국 ESS사의 거래 사례

오디오 세상에 특별한 인적 네트워크가 없으므로…

다짜고짜 박병윤 선생님께 전화드리고 몇 말씀을 듣고 대화 내용을 정리해 둔다. 별 가치가 없는, 치기 어린 탐구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기록해두지 않으면 대한민국 오디오 역사와 콘텐츠와 문화라는 게…

(인사 + 잠시 부드러운 대화를 진행한 후)

○ 그렇다면 3인치가 아닌 신형을, 또 다른 것을 만드시는 것이죠?

■ 제가 뭐인가, 멋진 작품을 만들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데… 네. 두 개 내지 세 가지만 하면 내 기력이 다할 겁니다. 하하~

○ 다 되면 보여주십시오. (웃음) 선생님, 서음전자라고 아시죠? 1975년에 엄익정 대표가 서병수라는 분과 합작하여 회사를 만들고…

■ 그분은 영업을 잘했죠. 영업하고 관리…

○ 아~ 엔지니어가 아니고 영업이요? 관리요? 회사 CEO로서 격이 맞는 분이셨군요.

■ 예~예.

○ 제가 서음전자를 많이 좋아합니다.

■ 물건을 아주 잘 만들었어요.

○ 네. 동의합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은 인켈과의 상관관계를 많이 생각하게 되지요. “인켈에 있다가 나왔다”라는 언급을 자주 듣게 되는데요.

■ 네. 그렇죠. (엄익정 대표가) 언제나 부담감을 갖고 있었어요. 왜 그런고 하니… 그 양반이 인켈 성장에 꽤 기여를 했거든요. 그런데 거이 뭐이가… 자기도 한번, 세상에다가 자기 브랜드 한번 심어보겠다고 해서 나왔는데… 만만치 않았죠. 고생 많이 했어요.

○ 그래도 활동은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트랜소닉 스트라토, 지멘스, 유럽의 이런저런 브랜드와 거래를 하고… 반도상사가 수출에 도움이 되었겠죠?

■ 네. 물론이죠. 하여튼 우리나라 오디오 역사에 조그만한 페이지 하나를 차지할만 합니다.

* 관련 글 : Trasonic-STRATO R-7000/R-9000 리시버, Made In Korea

○ 아무리 뒤져도 얼굴 사진이 없고… 1989년까지 제품이 나왔는데 그 이후 서음전자가 어찌 되었는지와 엄익정 대표가 어찌 되셨는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 수출품이 나가 가지고 불합격 되었어요. 구라파에 나간 게. 그래 가지고 그거를 수습하려다가… 엄청난 손해배상금도 나가야 하거든요. 바꿔줘야 하거든요. 역부족이었다고 봐야지요. 정말 안 되었다고. 품질관리를 한다고 했는데, 사장이 다 할 수는 없잖아요? 밑에 있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못한 거예요. 결론적으로. 아깝죠.

○ 그게 언제쯤이었습니까?

■ 아 뭐… 그때 마지막 제품이 나올 즈음에. 제가 그때 한참 같이, 열심이 일했으니까. 아주 친하게 지냈거든요. 1주일에 한번 우리집 근처 서교동 커피샵에서 만나서 세상 돌아가는 일, 내가 연배가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도 하고… 내가 도움도 줬어요. 듀알 턴테이블이 필요하다고 해서…

○ 아하! 듀얼 턴테이블 취급에 대한 기사가 있습니다. 그게 박병윤 선생님과 연결이 되는군요.

■ 거 당신 필요하면 팔아봐라. 스피커가 필요하면 원하는대로 다 만들어줄께. 인켈하고 선의의 경쟁을 해라. 인켈 회장하고도 친구니까 잘해드려라. 그렇게 조정을 좀 했죠? (웃음)

○ (웃음) 그러면 구라파 클레임이 걸린 후 회사가 부도가 났습니까? 폐업인가요?

■ 그렇게 해체되고…

○ 해체? 일단 사업등록은 종료된 것이죠? 아깝습니다.

■ 아깝다우. 진짜 아까워.

○ 제가 유럽에서 서음전자 튜너를 하나 구해서 튜닝하고 잘 듣고 있습니다. 잘 나오고 너무 잘 만들었고 좋은 기기입니다. 제 짝 앰프를 찾는데 정말 구하기 어렵습니다.

■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안 내놓는 것이죠. 소리가 좋으니까. 참 자랑스러운 브랜드예요.

○ 그러면 엄익정 대표는 생존해계시는 것이죠?

■ 아이고! 한참 연결이 안 된 것을 보니까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살아 있으면 나한테는 어떻게든 연락을 할 것인데… 그때 심리적인 타격도 많이 보고 하여튼 그때 건강도 나빠지고… 그렇게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 살아서 열심히 잘 해야 하는데…

○ 탐구를 해보면 70년대, 80년대, 90년대 얼마나 많은 분들이 활동을 하고 그 가치가 얼마나 큰 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인켈에서 그분이 나오셨을 때, 제가 보면 서음전자 기기에 스코트, 인켈의 흔적 같은 게 있어요. 인켈에서 기본적으로 적대적이거나, 방해를 한다거나 그런 것은 없었나 봅니다? 이야기 잘 되어서…

■ 나가서 독립하려면 잘해봐라…

○ 긍정적으로 밀어주는…

■ 일단 그렇게 밀어주는 것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방해한 것도 아니고.

○ 네. 그런 정도만 해도 좋네요. 그래서 트랜스포머나 전체 레이아웃 등에서 스코트의 어떤 흔적이 많이 묻어 있는 모양입니다. 스코트의 영향이 인켈로 갔고 다시 서음전자로 일부 녹아들어 간…

■ 네, 네. 맞습니다. 하여튼 그 당시 고급으로, 인켈 하고 슈트라우트 쪽 하고, 두 집이 고급으로, 신경을 많이 썼죠. 도움을 많이 주었죠. 우리 업계에. 하여튼 이렇게 탐구하고 역사를 찾아보고 저는 기쁘네요. (큰 웃음)

○ (웃음) 문과생이라서 그렇습니다.

■ 엔지니어링에 관심이 많아서 다른 쪽은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큰 도움은 못 될 거예요.

○ 저는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오디오를 구체적으로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은 언제나 남아서…

■ 그래서 한 분을 소개할게요. 이영동이라는 분 아시죠?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을…

(이후 대화는 생략)

* 관련 글 : 평론가 이영동의 오디오 생활

이상에서, 그동안 짐짓 이해할 수 없었던 엄익정 대표의 활동 중단이 1990년경 유럽 시장의 리콜 이슈로 경영에 치명적 문제가 생긴 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흔히 경영난 때문이라고 언급을 하지만 사실은 에둘러 표현했던 게 되어버린다. 이역만리 세상에 보낸 수출품의 납품 사고라… 도대체 어떤 시스템이었기에?

* (내용 추가) 전국은행연합회의 자료를 기준으로, 법인은 1995년 12월까지 그대로 존속하고 있었다. 

* 관련 글 : Lenco R-600 리시버의 오류와 서음전자공업의 활동상

인터넷 사진 한 장이 없어서 여전히 궁금하지만 그냥 넘어가고… 여러가지로 많이 아쉽다. 이제는 엄익정 대표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더.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 3년 전에 작고하셨다는 전언이…)

한편으로, 내년에 95세가 되시는 박병윤 선생님께서 “누구는 조금 먼저 가고 누구는 조금 늦게 가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셨고… 크리스마스에, 연말에, 연초에, 코로나에, 새해 건강을 기원하는 통화는 참 잘했다는 생각이다.

* 관련 글 : [오디오의 역사를 만나다] 고려전자 마샬, 박병윤 (1)

 

2 thoughts on “서음전자공업주식회사 엄익정 대표에 관한 가벼운 대화

  1. 어릴 때 신문에서 광고를 보고 동경했던 서음전자 스트라우트입니다.
    오디오 전문 브랜드로 잘 성장하였으면 좋았을텐데..안타까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1. 안녕하세요?

      기억하고 싶은 게 하나 둘 사라진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래서 더 메모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반갑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고요. 연말 마무리 잘 하시고 밝고 건강한 새해 맞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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