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DATABASE > 기생관광, 부산 동아대 앞 로얄 전자오락실 그리고 ASSA 브랜드 영풍전자의 ME-8800

기생관광, 부산 동아대 앞 로얄 전자오락실 그리고 ASSA 브랜드 영풍전자의 ME-8800

글쓴이 : SOONDORI

아래는 대한민국 노래방의 변천과 기술적 문화적 배경 등을 담은 연구논문의 일부. 씁쓸한 역사적 배경이 있으나… 논문 전체가 다 유익하고 재미있다.

초기 부산 노래방 문화 형성의 사회적 맥락과 매체사적 의미; 1980년대 가라오케 문화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윤상길 신한대학교 언론학과 조교수/장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부교수

초기 부산 노래방 문화 형성의 사회적 맥락과 매체사적 의미

본고의 연구 목적은 일본산 가라오케가 부산에 유입된 사회경제적 배경을 검토하고, 1980년대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번졌던 가라오케 문화가 1990년대 노래방 문화의 태동과 어떠한 관련성을 가지는지를 기술의 사회적 구성주의론이라는 시각에서 해명하는 데 있다. 연구결과, 1980년대 가라오케의 부산 유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회경제적 배경에는 1970년대 동아시아 기생관광산업의 구조 변동 속에서 정부의 관광객 유치 정책에 의해 부산을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이 늘어났다는 요인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 1982년 정부의 국제여행 알선업체의 등록제 전환과 그에 따른 여행업체와 가라오케 업소 간의 사업적 제휴, 가라오케 업소 간의 일본인 관광객 유치 경쟁 또한 부산 지역 가라오케의 증가를 가져온 요인이었음이 밝혀졌다. 한편, 1980년대 부산의 노래방 문화 형성이 가라오케 문화와 맺는 관련성을 매체사적인 시각에서 살펴본 결과, 초창기 직접적으로 노래방기계를 접했던 부산 지역의 사람들은 노래방의 ‘새로움’을 주로 전자오락기와의 비교를 통해 인지했었던 데 반해, 가라오케와 노래방을 비슷한 것으로 잘못 인식해 노래방을 ‘왜색 문화’라고 비판했던 언론은 비록 부정적 방식이긴 하더라도 노래방의 사회적 인지 확대에 매우 큰 역할을 담당했음이 밝혀졌고, 그런 점에서 1980년대 부산의 가라오케 문화는 노래방의 사회적 인지 획득 과정에 연관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중략)

당시 일본에서 사용되던 가라오케의 기술 형태가 오디오테이프 기반이었기 때문에, 이때 부산 지역에 도입되었던 가라오케도 같은 방식이었다. 다음의 기사에서 보면, 대부분 가사도 없이 반주만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트는 가라오케 형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번화가 광복동과 남포동 일대의 술집들은 ‘가라오케’가 번성하고 있다. 가사는 없이 반주만 녹음된 카세트를 트는 가라오케가 연주되면 거기에 맞춰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한 술집에 한국 가요와 일본 가요 수백 곡씩의 카세트가 준비되어 있다.13) 5공 때 무허가 접객업소가 양성화하면서 (부산) 시내 곳곳에 가라오케 바가 생겨났고 가라오케 시설도 우리 가요에 맞게 설치되었다.14) 주목할 점은 단지 일본인들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부산 지역 거주민들도 가라오케 업소를 이용했다는 사실인데, 여기서 제5공화국에 들어 정부의 3S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된 무허가 접객업소의 양성화가 내국인의 가라오케 바 이용의 정책적 배경이 되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위 기사에서 보듯, 상업지구 가라오케 바에는 일본 가요 카세트만 아니라 한국 가요 카세트로 구비해 놓고 있었고, 아래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대개는 한국 손님이 더 많이 들”기도 하였다.

(중략)

그래서 서울의 웬만한 업소에서는 기존의 가라오케를 처분하고 새롭게 비디오케를 설치함으로써 새로운 고객 확보에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실제로 1986년 당시 서울 영동의 고급 룸살롱을 중심으로 군소 스탠드바까지 급속히 확산되었고, 천호동, 방배동, 신촌 등 이름난 유흥가 골목에서 비디오케는 손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장건섭, 1986, 146-150쪽). 더 나아가 1990년대 초에 들면 콤팩트디스크의 뛰어난 음질에 비디오가 합쳐진 것으로 레이저디스크와 그와 유사한 콤팩트디스크 비디오(compact disk video)가 영상 가라오케의 신기술로 등장하여, 호텔 주변에 있는 소수의 술집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유경수, 1990). 그간 진행되어 왔던 가라오케 도입의 역사를 통해 보자면, 대략 비슷한 시기이거나 조금 이른 시기에 부산 지역에 비디오케가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중략)

송도영의 연구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처럼, 가라오케와는 별도로 ‘노래방’을 폭발적으로 증하게 만든 기반은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개발된 컴퓨터식 노래 반주기였다. 이 반주기가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8년 한국 전자박람회에 출품되어 상공부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는 한 중소기업(영풍전자)의 ME-8800이라고 하는 ‘컴퓨터 음악 연주기’에서부터다. 그런데 처음 출품 당시 이 기계는 그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사업화 실패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져 갔다.

(▲ 최종 출시된 기기가 이것이었는지는 모를 일. 1988년 10월 21일, 매일경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이 기계를 제작, 출품한 회사에서 제공한 자료를 보면, 1985년도에 이 회사는 당시 국내에서 처음 일본의 가라오케 반주기를 모방한 에코마이크 박스와 리듬 박스, 그리고 무선마이크를 개발하여 일본 가라오케 바이어에게 수출하기 시작했고, 1988년에는 독자적인 컴퓨터 반주기 모델을 내놓았다. 또, 1990년에 이 회사는 1988년 제품의 사업화 실패를 거울삼아 개선된 제품(CMP-9000)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수요가 적어 본격 출시하지 못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당시 한국 안에서는 일본식의 비디오테이프식 가라오케를 이용한 영업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일본의 레이저디스크식 가라오케가 우리나라 땅에 상륙할 채비를 갖추고 있던 상황이었다(송도영, 1997/2012, 203-204쪽).

(중략)

22) 한편, <노래마당> 기자였던 최길주(1993)에 의하면, 부산 지역 노래방의 역사는 다음과 같은 과정에 의해 발전했다. “컴퓨터를 전공한 현춘당 씨가 노래방 음향기기를 개발했던 1991년 4월 처음으로 그의 부인이 경영하던 동아대 앞 로얄 전자오락실에서 첫 번째 실험적인 운영을 시작하여 시민들의 반응을 알아보게 된다. 오락실 한쪽에 한 개의 작은 룸(약1.6평)을 마련하고 초기 음향기기를 설치하여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그리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시민들의 폭발적인 관심이 집중되자 두 번째 룸을 마련하게 된다.

처음이라는 것 때문에 이용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노래방은 신기함과 의아함이 중첩돼 시민들의 입과 입으로 전해져 이용객들이 몰리게 된다. 그당시 노래방을 찾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로는 이용요금이 한곳에 3백 원으로 저렴하다는 것과 불렀던 노래에 대해서 친절하게도 점수까지 알려준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급기야 지난 1991년 5월 12일 노래방이 ‘노래연습장’이라는 간판을 걸고 대중화되기 시작한다. 그곳이 바로 국내 최초의 노래방으로 부산시 남구 광안리해수욕장에 위치한 ‘하와이비치’ 노래연습장이다. ‘하와이비치’ 노래연습장(주인, 김철)이 위치한 광안리는 해수욕장이라는 지리적 특수성과 주거 및 관광지가 혼합된 대중놀이공간으로서의 장점을 갖고 있어 이용객이 많아 노래방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광안리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노래방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여 시내 곳곳에 자리 잡게 되었고, 7월 부산시 서구 충무동에서 ‘일번가’와 ‘국도’ 노래연습장이 문을 열게 된다”(231-233쪽).

[ 관련 글 ]
노래방 기기 안에 무엇이 들어있나? (1)
인켈 ER-2070 에코 리듬 믹서


[화요특집] 노래반주기 탄생 10년 (전자신문, 1997.07.29, https://m.etnews.com/199707290098?obj=Tzo4OiJzdGRDbGFzcyI6Mjp7czo3OiJyZWZlcmVyIjtOO3M6NzoiZm9yd2FyZCI7czoxMzoid2ViIHRvIG1vYmlsZSI7fQ%3D%3D)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88년 우리나라에는 30년간 축적했던 전자기술과 우리 민족의 문화, 정서를 결합시킨 새로운 개념의 전자제품이 선보였다.

이 제품이 발표되자 국내 전자산업 관계자들은 우리나라에서만 개발할 수 있는 독창적인 제품으로 새로운 시장 가능성을 여는 신호탄이라고 극찬했으며 이 제품은 1988년 개최됐던 한국 전자전람회 신제품 개발부문에서 상공부장관상을 수상한 뒤 1994년까지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어났다.

이 제품은 당시 영풍전자(현 (주)아싸)가 국내 처음으로 개발에 성공한 컴퓨터 방식의 노래반주기 「ME8800」였다. 영풍전자의 정영완 사장은 『1985년부터 국내에 침투되고 있었던 일본식 가라오케 기기로부터 국내 시장을 보호하고 민족문화의 자존심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으로 4년간의 노력 끝에 세계 최초로 컴퓨터 방식의 노래반주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1988년 한국전자전람회를 계기로 국산 노래반주기가 일반에 선보인 이후 노래반주기와 이에 필요한 모니터, 앰프, 마이크, 스피커 등 주변기기 시장은 1994년까지 가히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으며 노래반주기와 주변기기 사업에 참여하는 회사들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1995년부터 국내 노래반주기 산업은 전반적인 불황과 노래방의 포화상태를 맞아 신규수요가 침체되기 시작했으며 (중략) 노래방이 불건전한 문화의 온상이 된다는 사회의 비난과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 및 지난 1일 발효된 「청소년 보호법」 등이 노래방과 노래반주기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소로 등장해 국내 노래반주기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국내 노래반주기 관련시장은 연간 1천8백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운데 업소용 노래반주기 시장은… (기타 생략)

 

2 thoughts on “기생관광, 부산 동아대 앞 로얄 전자오락실 그리고 ASSA 브랜드 영풍전자의 ME-8800

  1. 유투브 채널중에 노래방 기기들을 직접 수리하시는 과정을 담은 채널이 있더군요.
    음향한끼 라는 채널인데..회사가 아마 금영이지 싶은데…재규어 브랜드 앰프들로
    과거 직적 개발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A/S만 전담하시는 것 같네요.
    https://www.youtube.com/@soundnyamnyam

    1. 안녕하세요?

      ‘전자제품은 때리면 고쳐진다 그러길래…’ 편을 보았습니다. 참 재미있군요. 좋게 생각하는 독일제 Hameg 오실로스코프도 보이고… 말씀도 잘 하시고…

      그런데 영상 편집한 것을 보면, 촬영/편집 전문가가 개입하신 듯합니다? 촬영 각도나 작업 흐름의 조합, A컷, B 컷 등의 조합이 매우 좋습니다. 하하~ 네… 매우 재미있는 채널입니다. 소개 고맙습니다.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