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SOONDORI
최초 국산 진공관 라디오 A-501을 만든 금성사보다 1년 앞서서 라디오 제작에 뛰어들었던 기업, 삼양전기공업주식회사가 있었다. (표제부 사진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isynergy)
“…한편, 이와 더불어 국내에서도 1957년에 삼양전기, 1958년에 금성사가 최초의 라디오생산업체로 등장하여 수신기 부품을 수입하여 라디오 생산을 시작하였다. 이처럼 방송의 활성화와 국산품 제조에 따른 수신기의 가격 하락에 힘입어 1960년대 이후 수신기 보급율은 급격히 증대하였다. 1959년에 겨우 30만 대를 넘어섰던 보유대수는 1960년에는 42만여 대로 늘었고, 1961년 9월에는 89만 3000대, 1961년 말에는 100만 여대를 돌파하게 되었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7231#)”
‘최초 국산품’ 관점에서는 금성사에 밀려 별 의미 없는 기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시 국산, 외산의 판단기준이라는 게 단순 조립 대 (국산화 비율 관점에서) 약간의 가미(加味)가 있는지 정도의 구분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리면… 아주 조금은 다른 평가를 할 수도 있겠다.
(ST-701 진공관식, 출처 : g2b.go.kr)
삼양전기는 1970년대 초중반까지 ‘종합가전메이커’라는 기치 아래 라디오는 물론 TV, 선풍기, 곤로, 스토브, 카라디오 등을 만들었던, 나름 잘 나갔던 기업. 합작선은 일본 Sanyo이다. (삼양전기와 산요는 물론 금성사와 산요, 삼성과 산요의 협업사례들을 보건대 일본 Sanyo가 해외 협업거래에 꽤 적극적이었던 듯하다)
라디오 시장 내 비중은 미약했던 모양으로 아랫글에서 “영세했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 국내에는 일제 라디오를 조립하는 삼양전기, 태양전기, 아이디알공업 등 3사가 있었으나 단순조립으로 그 규모가 영세하여 금성사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에 고무된 금성사는 라디오의 고급화에 노력하면서 처음으로 트랜지스터라 디오의 개발에 들어갔다. 1963년에 진공관식 라디오 2만 2,500대, 트랜지스터라디오 8만 4,600대를 생산했다…” (출처 : 김천욱,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기계공업사-33, 한국기계공업사-라디오)
* 관련 글 : 금성사를 앞서 나간 천우사, 기억하지 못하는 국산 브랜드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isynergy)
(삼양전기 ST-601 라디오, 출처 : https://www.kobay.co.kr)
(오리지널 모델인 산요 6S-08, 6석 라디오. 출처 : http://www.doctsf.com/grandlivre/affimagev2.php?iid=37704&ity=F&iva=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