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SOONDORI
헝가리 뉴스 사이트에서 꽤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몇 가지 단락들에 참조할 만한 것이 있다고 판단하여 일부를 등록해 둔다.
삼성의 보이지 않는 무기 : 부품 제조 (글쓴이 Olivér Asztalos, 2015년 9월 22일, 원본 URL : https://www.hwsw.hu/hirek/54548/samsung-komponens-gyartas-nand-ssd-kijelzo-dram-lcd-soc.html)
흑백 TV에서부터 가장 앞선 기술에 이르기까지, 또는 현재 삼성이 Apple과 같은 회사를위한 최고의 구성 요소 제조업체가 된 방법.
삼성의 이름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핸드셋을 제공하는 스마트 폰 제조업체 중 다수 또는 TV 시장의 선도 브랜드가 처음으로 기술 및 판매면에서 처음으로 뛰어 들고 있습니다. 위에 열거 된 시장이 이제는 유일한 회사에 의해 지배되는 것은 그 자체가 작은 무기는 아니며,이 한국의 성과는 노키아, 소니 또는 인텔과 같은 회사를 오랜 세월 동안 운영함으로써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의 성공은 삼성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의 선도적 인 전자 회사 중 하나라는 의식을 쌓아 왔음에 따라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흑백 TV에서 기술의 메카에 이르기까지
삼성 전자는 1969 년 설립 된 이래 삼성 전자와 합작 투자를 통해 경험을 쌓지 못한 최초의 12 인치 흑백 TV를 출시했습니다. 첫 번째 모델 인 이병철 (Lee Byung-Chull Lee)의 성공은 미래의 엔터테인먼트 전자 시장에서 삼성을 가장 밝은 별 중 하나로 시각화하는 데 충분했다. 창업자에 따르면,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부품 중 상당 부분이 주로 일본에서 바다로 수입 되어야만하기 때문에 심각한 어려움이 없어야했다. 이는 회사의 추가 성장을 크게 제한하는 의존성이었다. 삼성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첫 번째 결과는 음극선 관 생산 설비를 생산 한 결과 두 개의 텔레비전 생산 라인이 생겨서 연간 48 만 대의 생산이 가능했다. 투자의 성과로 1973 년에 마하 506이라는 최초의 완전 설계 및 제조 된 트랜지스터 모델이 태어 났으며 성공한 제품은 냉장고, 에어컨 및 세탁기로 확장되었습니다. 후자의 경우보다 중요한 단계는 현재 파산이 예상되는 한국 반도체의 대주주 인수이며 삼성 반도체의 이름으로 1978 년부터 운영되고 있습니다. 올해 말 삼성 전자는 5 백만 달러의 저렴한 TV를 출하하여 수출 매출을 1억 달러로 끌어 올렸다.
개발과 확장이 멈추지 않았으므로 삼성 전자 아메리카가 미국에 설립 된 반면 수원에서는 개발 핵심 기업인 R & D 센터를 설립했다. 현재의 범위에서 VCR을 특징으로하는 삼성 전자는 또한 회사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이었던 다른 제조업체가 자체 솔루션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의 주요 구성 요소 중 하나를 출시했습니다. 1980 년대 삼성 전자와 삼성 반도체의 합병 이후 인텔의 IBM과 Bell Labs의 전문가들이 한국에 관심을 갖게됨에 따라 반도체 산업의 발전도 가속화되었다.
후자의 결과로, 4 년 후, 1984 년 업계 최초의 256K DRAM 칩이 탄생했습니다. 이것은 메모리 세계에서 기술적 이정표였습니다. 같은 해 VCR 용으로 개발 된 첫 번째 제어 IC를 생산 한 다음 내년에 또 다른 회로 인 64K SRAM 칩을 생산했습니다. 삼성의 리더십은 이를 발전시켜 1986 년 삼성 경제 연구소 (SERI)를 창설했으며, 1 년 후 90 년대를 설립 한 두 개의 연구 개발 센터 인 SAIT (Samsung Advanced Institute of Technology)가 뒤를 따랐다. 혁신. 이 모든 것은 1992 년 삼성 전자가 5 년만이 지났을 때 메모리 칩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았을 때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1990 년대 중반에 반도체 제조에서 축적 된 경험과 도구를 사용하여 다양한 DRAM 제품을 개발하는 동안 그들은 플래시 메모리 및 TFT-LCD 패널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11 인치 모델은 생산 라인에서 약 40-50 % 떨어져 있었고, 경쟁 제품은 이미 유사한 제품의 가격을 낮추고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은 공격적인 투자와 더 높은 개발 률로 반응을 보였으므로 경쟁이 일어나기 전에 첫 번째 12 인치 패널은 천년 말에 1 조 달러의 연간 이익을 달성 한 삼성과 함께 등장했습니다. TFT-LCD 기술에 대한 투자로 최고의 패널 뿐만 아니라 무수한 귀중한 특허도 불구하고 회사의 위상이 더욱 향상되었습니다.
독립 창립 직후 수십 년 동안 준 이익의 반전은 삼성을 수직 통합 회사로 이끌었습니다. 회사 경영진은 경영 분야에서의 핵심 역량을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왔습니다. 결국, 자체 설계 제품에 필요한 주요 구성 요소의 주요 부분은 삼성 전자 부서에서 고유 한 방식으로 개발 및 생산됩니다. 이 운영 모델을 사용하면 구성 요소가 전반적으로 저렴 해지고 각 제품에 필요한 개발, 설계 및 제조 시간이 더 짧아지므로 이 방향은 회사의 현재 위치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하 생략)
이상에서, Google이 거의 완벽하게 번역해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 그 말은, 글쓴이가 대단히 정확하게 문장을 구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어디 있나 마하 506은?”
표제부 사진 TV가 최초 TV 마하 506일 수도 있겠지만 정확한 정보를 찾을 수 없어서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삼성전자가 처음 만들었다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정보 찾기가 불가능했던 것과 같은 사례.
* 관련 글 : 삼성전자가 잃어버린 최초 라디오
썩 잘 돌아가는 요즘의 인터넷 세상의 여건을 생각하면 참 이상한 일이다.
일류기업이 되었다는 오만함에 찜찜하거나 감추고 싶은 자신들의 과거는 돌아보지 않겠다는 행태일까? 그래서 소장자료를 슬그머니 Web에 풀 생각조차 안한다는? 그런 게 아니고… 아무래도 오래 전 금성사에 한참 뒤쳐졌던 삼성전자의 사고(史庫)에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모양이다. 더하여 바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에 별 관심이 없다.
어쨋거나 초창기 삼성전자 TV에는 a) 미쓰비시 기술연수와 진공관 TV 개발, b) 2년 후 삼성산요전기 합작법인 설립과 트랜지스터 TV 개발이라는 역사적 팩트들이 엮인다. 모든 것들이 일본 기술, 일본 기술자들의 협조 하에 진행되었다는 것인데… 오늘의 삼성전자가 어떻게 홍보를 하든 어설픈 시절에 누군가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
다음은 약간의 흔적이 묻어 있는 1974년 1월 자 중앙일보 기사(https://news.joins.com/article/1366869)
(이전 생략) … 물품세가 올랐다. 또 TV·전기세탁기·녹음기·냉장고·축음기·1만원 짜리 이상의 석유류 이용기구 등 전기제품의 물품세도 평균 40%이상 1백50%까지 올랐는데 이번 물품세 인상으로 삼성전자 「마하」506 19「인치」의 경우 현행 8만6천4백27원에서 9만6천30원으로 값이 오르게 된다. 이밖에 골프장·카지노·독탕휴게실·사교「댄스」장 등 사치성 소비행위장소의 입장세는 현행보다 평균 배 이상 2배까지…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