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SOONDORI
10.26 사건 이후 어느 날 갑자기, 손에 현금 20만 원이 쥐어졌다.
늘상 조르고 타령했던 ‘테스터기’ 그리고 또… 타령했던 ‘드릴’을 살 돈. 읽고 읽었던 ‘라디오와 모형’을 따라가자면 몇 가지 필수 도구들이 필요했다. 반찬그릇을 가공하려니 드릴이, 주먹구구 땜질 그 이상에 도전하려니 ‘테스터기’가 있어야 했더라는?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20만 원에서 13만 원쯤으로 드릴을, 5만 원쯤으로 테스터를 샀던 듯하다. 그리고 한참 후의 깨달음으로서 어리벙벙 까까머리가 노변 좌판의 늙다리 장사꾼에게 뒷통수 맞은 사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시장 상황 모르는 바보의 생각? 혹은 속 모르는 적정가? 고장 난 스피커를 눈 하나 꿈쩍 않고 팔아먹고는 먼 길 하루 두 번을 왕복하게 만들었던 서울 장사동의 어떤 양심불량 장사치에 의한, 그즈음의 어린 마음 억하심정이 오버-랩 되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70년대, 80년대… 대충 높게 부르고 받으면 장땡이고, 먹고 튀고, 당사자 앞에서 입씻기 해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던 시절에는 너도 나도, 많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아무튼 수년 전, 근 40년 전의 흑백 기억들을 되살려주는 그 드릴을 다시 만났다.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대충 보관했던 것을 꺼내 잘 닦고 기억의 소품들을 보관하는 장 안으로. 이쯤 하니… 비싸고 싸고, 동작되고 아니고 가 무슨 상관인가? 추억과 기억이 묻은 물건은 그냥 갖고 있어서 좋을 뿐.
(이제야 제대로 인지를… 시어스 브랜드 제품! 혹시라도 국내 OEM 생산품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상상해보기로… 오늘의 익숙하고 습관적인 빈티지 오디오, 빈티지 라디오 탐닉은 그 40여 년 전의 결핍과 호기심이 만들어 낸 모종의 욕망, 그 욕망의 늦깍이 행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삼창? 삼흥? 아무래도 새한? 빨간색, 초록색 음영 글자들이 박힌 투박하고 검은, 내 인생 첫 번 째 ‘테스터기’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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