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SOONDORI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운영하는 K-Developedia 웹 사이트에서 만나게 된 국가기록원 자료. 촬영 일자를 1962년으로 기록해 놓았다. 금상사 A-501의 출시 이후, 불과 3년이 지난 시점.
○ ‘D線 組立工程’
조립 라인 작명에 알파벳 + ‘線’을, 한글이 아닌 한문으로 쓴 게 특이하다. 그 시절에는 너무 모범적이고 표준적이고 스탠더드 하고 당연한 행위였을 터. 고대 이래로 한자 문화권이 어쩌고저쩌고 할 게 아니라 그냥… 일제의 잔재.
각 라인에 조장이자 기술을 좀 아는 분으로 추정되는 남자 사원 1명, 그다음에 여성 사원이 쭈르륵~! 모두는, 대한민국 최첨단 산업에 종사한 분들.
(▲ 조립된 박스를 탑 쌓기 한 이유는? 물량을 대느라 몹시 바빠서 미리 준비해 두기? 그래서인지 현장이 정말 어수선하다)
○ 금성사 A-601-2S
당연히 진공관식. ‘2 밴드 트윈 스피커’ 제품임을 강조한다.
(출처 : https://www.kdevelopedia.org/Resources/view/–01201612200146877.do)
2 밴드는 AM/FM이 아니라… 시대 여건상 FM은 불가능, AM + SW 조합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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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참고용으로 기록해 두는 마쓰시다 AM-390.
1960년대 초, 일제 라디오 디자인은 다 거기서 거기인데… 산요 SF-78을 참조했던 A-501처럼, A-601 역시 어떤 일본 모델의 컨셉을 차용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단 Knob 주변 형상을 보면 아무래도 실행 디자인은 국내에서 처리했을 듯.
(https://aucview.aucfan.com/yahoo/b1072016986/)
○ 다큐멘터리 재계 50년(16) 전자 산업의 태동, (매일경제, 1995.06.07, https://www.mk.co.kr/news/economy/1475832)
“… 방송은 53년 서울중앙방송국이 2510KHz로 개시됐고 54년에는 국내 최초의 민간방송인 기독교방송국이 개국됐다. 58년에는 최초의 상업방송인 부산문화방송국이 방송을 개시했다.
금성사는 국내 최초의 진공관 라디오(모델명 A|501)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일본이 경쟁적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던 국제상황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나 59년 국산 라디오 생산은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효시로서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다.
미군으로부터의 라디오 유출과 밀수품의 범람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금성사는 정부의 특정 외래품 판매금지법 제정과「농어촌라디오 보내기 운동」에 힘입어 자립 기반을 마련한다.
이원우 당시 공보부 장관은 군사정부가 하던 일을 농어촌에 선전하기 위해 대대적인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실시, 국내 유일의 라디오 생산업체였던 금성사는 주야 4 교대 작업을 강행할 정도의 호황을 누리면서 단숨에 경영정상화를 이룩했다. 61년 9월 89만 여대였던 라디오 보급이 62년 말 1백 34만대로 늘어난 것은 이 때문이었고 그 대부분의 물량을 금성사가 독식했다.
금성사는 62년 국내 처음으로 미국에 62대의 라디오를 수출, 전자제품 수출의 길을 열었다. 수출 증가와 함께 국내에는 삼양전기, 태양전기, 아이디알공업 등 라디오 생산업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방송 및 전기통신의 확충으로 인해 진공관이나 건전지 등의 재생, 히트코일 등의 생산, 전화기 국산화 등을 위한 기술 축적도 당시에 이루어짐으로써 전자공업의 기반이 닦여갔다. 스위치 노브 트랜스 소켓 코드 등의 생산도 이때 이루어졌고 기술 축적과 함께 콘덴서 저항기 스피커 축전지 등의 부품 산업도 확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