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SOONDORI
인터넷이 정보 유통의 벽을 허물기 전까지, 꾸준히 그러나 가끔만 접할 수 있었던 빈티지 잡지들.
■ TV 가이드
요즘도 TV를 보시나? 미제 잡지의 클론 버전은, 작명 때문에라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 박중훈 씨가 아주 젊었을 때를 담은 1988년 발행본. 출처 : https://m.yes24.com/UsedShopHub/Hub/119445042)
“코미디언 심철호의 네 번째 중공 방문기” 그러면, 확실히 1980년대에는 적대국가 ‘중공’의 개념이 살아있었던 것. 이제는 ‘중국’이라고 하고 마동석 씨가 알리익스프레스의 홍보 요원으로 활동 중이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됨.
■ 리더스 다이제스트
1922년에 창간된 미제 잡지의 한글화 버전. 원판은 한때 발행 부수 1억 부를 찍었다고 하고… 주머니에 구겨 넣을 수 있는 크기의 책 안에 소소하게 재미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고 기억한다.
(출처 :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83298279)
“동물의 왕국 세렌게티”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주야장천 나오는 곳.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전혀 기사거리가 안 되는 세상이 되었음.
■ 선데이 서울
“역쒸 표준은 썬데이서울이쥐~”
아주 아주 오래전, 고맙게도 시골 버스 정류장 언저리에 한 권이 버려져 있었음. 다 읽고 버린 것인지? 아무튼, 그게 마지막으로 본 것.
(▲ 1989년 발행본. 출처 :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241082048)
발행 기간은 1968년~1991년. 발행자는 서울신문사.
전신은 대한매일신보. 행정 공고용 4대 일간지로 선정되어 특별 대우를 받았던, 일종의 정부 기관지였던 서울신문사가 야한 느낌의 잡지를 발행했다는 게 특이하다. 병 주고 약 주고 식, 3S 정책의 일환이었을까? 현재는 호반건설 소유. 언론이 사기업 특히, 토건족에게 종속되면 안 되는데…
■ 주부생활
남자가 보기에는 전형적인 아줌마 잡지. 어디를 가면 접객 탁자 위에 흔히 놓여 있던 것들로 여성동아도 있었고…
■ 빨간책
이런저런 정류장 잡지의 콘텐츠 강도가 세지면, 거의 ‘빨간책’을 향해서 가게 된다. 그런데 왜 그 거시기를 빨간책이라고 했을까? 굳이 Red Book이라고?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일 년, 이 년이면 변한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도 이제는 어색함. 장비가 워낙 좋아서. 그리고 대략 30~40년 주기로 생활의 모든 것이 변한다는 생각인데… 인간이 기억하는 주기와 관련 있다 싶음.
어찌 보면 그게 빈티지化의 주기. 그러면 ‘빈티지’는 물건과 시간의 작용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이 정하는 것?
그리고… 갑자기 빈티지 물품과 중고품과 고물의 개념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1) 중고(中古) : 옛 고(古)를 생각하면 (오로지 神만 아시는) 어중간하게 古라는 뜻.
2) 고물(古物) : Old Stuff. 어중간하게 古인 물건.
3) 고물상(古物商) : 고물을 유통하는 자.
4) 빈티지 : 숙성이 필요한, 통에 담긴 와인에서 유래된 말. 이게 ‘중고’와 무슨 1:1 상관관계가 있다고…
5) 구제(久製) : 아주 오래전, 길거리 상점에 붙은 단어를 처음 보았을 때 구라파제라는 뜻인 줄 알았다. 해석하면 중고품이거나 빈티지품. 희한한 꽈배기 일본말일까? 찾아보니 6.25 동란 때 구호품으로 들여온 중고 옷가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오래 입을 수 있는 미제 옷.
아하! 다 뜻이 명확한데… 왜? 빈티지는 그럴듯하고, ‘고물’이라고 하면 폐기함이 마땅한 물건이 연상되는 것인지? 게다가 옛날 물건이라는 느낌과 쓸모없다는 느낌과 쓸모없고 폐기되어야 한다는 느낌이 각각 다르고?
“어이~ 칭구, 그깟 고물 오디오는 갖다 버리지 그래?” 모든 것은 그 말에서 출발한다. “고물이라고 하면 시시껍절하고 빈티지라고 하면 뭐가 있어 보이시나?” 시니컬한 자의 급작스럽고 자가당착이 분명한 셀프 반발감에 익숙했던 오래된 말 우선!
그러면, ‘빈티지 오디오 콘텐츠’를 ‘고물 오디오 콘텐츠’로 바꾸는 게 맞겠는데… 인터넷에 퍼진 것을 거둬들일 수는 없음. 대신에 앞으로는 “고물 오디오를 좋아하는 자, 고물 오디오에 대한 글 쓰기를 좋아하는 자입니다”라고 말하고 다녀야겠다. 상대가 오해를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