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SOONDORI
늦깎이로 직장을 잡고 그럭저럭 재미있게 지내던 시절에… 사무실 한쪽에 구닥다리 PC가 한 대 놓여 있었다.
* 관련 글 : 원격지 문자 전송 장치, 텔레타이프
담당자께서 “난 잘 몰러~” 오랜 시간 플로피 디스크에 담긴 어떤 프로그램만 돌릴 뿐이라고 하셨던, 구입 시점에는 대단히 비쌌을 것이 뻔하지만 사용 빈도로는 절대로 복사기나 FAX 수준이 안되었던, 그리고… ‘전국 사업소 뿌리기’였다면, 누군가 한탕 이문을 취하고 나갔을 뻔한? 그런 일제 컴퓨터.
아주 가끔씩, 아삼삼한 추억 속의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그랬었는데… 어떤 분께서 초정밀 3D 작업을 해놓으셨더라. 감사한 마음으로 진득이 노려보면서 요모조모 기억을 더듬어 보니, 딱 PC-9801 Full 세트. 8086/8088 XT급 VM2 버전이었을 것. 참고로 VX는 80286 AT급.
* 출처 및 URL : https://www.turbosquid.com/de/3d-models/japanese-retro-personal-computer-nec-pc-98-3d-2056045
(IBM XT급에 상당하는 VM 버전에 대하여) 16비트 NEC uPD70116@8/10Mhz(1984년 소개된 V30 CPU 언급도 있음), 기본 384K/최대 640K RAM, 2 FDD 기본, 해상도 640 x 400, 1985년 소개.
(▲ 비슷한 시기의 XT 클론 제품에 비해서 밀집도가 상당히 높다. 이유는… NEC가 자사 칩 솔루션 위주로, 정저지와 일본 세상 안에서 복잡하게 구현한 탓이 아닐까 싶음. 다소 폐쇄적이거나 전근대적인 여건이… 듣자니 매뉴얼이 부실하여 여러 개 빨간색 DIP 스위치(화면 텍스트 크기, 폰트 설정, 기타)를 설정하기가 어려웠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다. 출처 : https://page.auctions.yahoo.co.jp/jp/auction/x1119397452)
이쯤에서,
1) 왜 그분은 지난한 CG 작업을 하셨을까? 2) 왜 그 시절의 초고가품 NEC PC 1식이 거기에 있었던 것일까?, 3) 왜 흔한 IBM PC 계열 제품을 쓰지 않았을까? 세 가지 셀프 질문을 해보게 된다.
○ 첫 번째 답은, 기술적 과시. 아마 그곳에 더 많은 빈티지 PC나 빈티지 오디오 모델링 자료가 있을 듯.
“… TurboSquid is headquartered in New Orleans, Louisiana in the United States and is supported by the Office of Louisiana Entertainment. In 2021, TurboSquid was acquired by Shutterstock…”
○ 두 번째 답은, 이 모델이 일본 PC 산업계에서 한 획을 크게 그었기 때문에. CG 작업자도 그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
CP/M-86, MS-DOS도 쓸 수 있는, XT 클론 유사 제품으로서의 초기 모델이 1982년에 소개되었고 이후 1999년까지 16비트/32비트 시스템이 누적 1800만 대가 팔렸다고 한다.
어머어마한 양이다. 그리하여 ‘NEC PC-9800 시리즈’로 통칭되는 구조적/시스템적 틀이 다른 일본 제품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듣자니, 나름 개방형 생태계를 지향하여 NEC 외 여러 소프트웨어/하드웨어사 개발사가 포진해있었다고 함. (생태계 구축은 지금도 Google, WordPress, 이더리움 등 잘 나가는 회사가 취하는 비즈니스 틀이다)
한 줄로 정의하면, 한 시대를 풍미하였고 일부는 폐쇄적이기도 한 ‘일제 빈티지 PC의 표준’. 여기서, 폐쇄적이라고 하는 것은, IBM 호환 PC의 프로그램이 죄다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 “사무실의 O.L.에게 NEC 컴퓨터 사주면, 매출이 쭉쭉~ 올라갑니닷!” 그런 취지. || 탑 레벨 81만 엔이면, 그렇고 그런 일제 FM 튜너를 30대쯤 살 수 있는 금액. 출처 : https://necretro.org/images/6/6b/PC9800Series_JP_Flyer.pdf)
○ 세 번째는… 글쎄요? 1980년대부터 국산 IBM 호환 PC가 잔뜩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돌아가던 프로그램이 NEC N88-BASIC(86)으로 만들어져서? 국산 PC의 번들 프로그램이 너무 어색해서? 또는, 응? 정말로 한탕 거래 때문에? 가만있자, 1985년 기준, 100엔은 원화로 370원 정도. 3.7배. 그러면 81만 엔은 300만 원쯤이다. 80년대 봉급쟁이의 한 달 봉급을 생각하면, 어휴~ 체감상 ‘억’이 훌쩍 넘어감. 그것에 곱하기 전국 수십 대, 수백 대, 수천 대였다면…
1980년대 중반이면, PC가 매우 생소했던 시절이다. NEC가 국내 시장 공략을 위해서 원가에 또는 샘플로 수십 대를 제공했을지도 모른다. 전국구 조직으로 레퍼런스를 잡고 다음 조직을 공략하려는 확산 전략 같은 것. 또는 국내 재벌과 NEC 거래에서 나온 일종의 강매 물품을 겸사겸사 헐값으로 넘긴 것인지도 모르고 또, 한자를 내장할 수밖에 없는 NEC 또는 일본 PC의 속성 때문에 한글의 대체 구현이 용이했다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고. 물론, 금성사, 삼성전자, 대우전자, 미쿡 제작사가 가만히 있었을 것 같지는 않으니… 어쨌든 시장 전쟁.
좋게 상상해서, 이웃나라 시장의 산점을 위한 헐값 공략에 무게를 두고… 그렇게 대형 조직을 대상으로 하는 물밑 힘겨루기를 거치고 일반용 PC가 보급되려는 찰나에 정부가 ‘공인 교육용 컴퓨터’ 카드를 꺼낸 것은 일종의 관 주도형 시장 방어막이었다고 생각한다.
“…유의사항 : 교육용 컴퓨터는 업체별로 정부인증모델과 기존모델(비인증 ’89년 제품)이 혼합 판매되고 있으니 구입시 반드시 확인하십시오…” (삼성전자 SPC-3100S 광고물에서)
가만 보면 이 베스트 셀링 제품의 일본 시장 내 성공 키워드는, MS-DOS 외 다양한 OS 채택 + 협업 기업의 개입을 유도하는 적극적인 SDK 배포가 아닐까 싶음. PC-8000 시리즈는 놀이도구이기도 한 MSX와 격이 다르다. 제아무리 게임 천국인 나라라고 해도 진지한 응용 프로그램들이 적당히 공급되었으니까 본체가 잘 팔렸을 것. 아닌가?
그런데 거기까지만. 윈도우, IOS, 리눅스 등 OS가 바뀌고 하드웨어 플랫폼이 바뀌는 세상이 도래하면서, 동전 지갑을 들고 다니는 나라 고유의 정저지와 불리함에 의해서… 오래전에 PC 시장에서 철수, 레노버 합작이 어쩌고저쩌고 그랬다 ~카더라.
과거나 지금이나 미래나… “무형 소프트웨어는 유형 하드웨어를 지배한다”. 중심 추는 일본에 있지 않고 미쿡과 주변국에 있었음. 지금도 그렇고. 만일, 폐쇄적인 NEC 제품이 일본에서와 같은 기세로 국내 시장을 선점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망패 운명의 정저지와 기술에 묶이면서 IT 식민지가 될 뻔했다는…
결론. 눈 앞에 있었던 PC-9801/VM은, 패퇴한 이토 히로부미 침략군의 낙오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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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을 99년에 들어 갔는데..당시에 자신들이 입사 초기에 이상한 일본 IBM호환 기종에서 이상한 프로그램으로 워드 작업을 했었더라는 과차장의 무용담을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NEC 였던 것 같은데.. 사무실 한켠에 모셔두고..정작 실무에서는 30cm 방안자를 사용해서 볼펜으로 문서를 작성했었다고 하더라구요…80년대 후반 이었을 것 같습니다.
처음 XT를 본 것은 사촌형님의 현대 컴퓨터 였는데, 1987년 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고, 92년에 학교를 들어가니..하숙집에 XT가 있어서 아래한글로 워드 치느라..눈치 보였던 기억이.
안녕하세요?
댓글 정보 고맙습니다. 말씀처럼, 제 기억 속 담당자께서도 뭔가… 살짝 투덜거리셨던 것 같고… 이게 여러 곳에 납품되었던 모양이군요.
담벼락 너머에서 바라보는, 흘러간 대한민국 과거는 늘 흥미롭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