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SOONDORI
1972년에 발행된 산수이전자공업(山水, Sansui Electronics)의 컬러 홍보물은, 1947년에 설립된 그 회사가 어떻게 발전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후의 비전은 무엇인지 등을 다룬다.
“머라 카노? 씨~잘떼기 없는 텍스트는 마냥 무시!” 그저… 직원들의 활동 사진을 종축으로, 이것 저것을 정리한 편집 틀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정말로 편집자의 의도가 그러했다면… 그 분에게 엄지~척!
(▲ 설립자 코사쿠 키쿠치(Kosaku Kikuchi))
(▲ 스피커 부문이 문건의 앞쪽에 위치하는 것은, (쿠미코 세공 그릴을 응용한) 산수이 격자 스피커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기 때문인 듯)
* 관련 글 : Sansui SP-2500 빈티지 스피커와 쿠미코 세공 그릴
(▲ 하나 하나 손으로 땜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공장에서도 그랬다.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 태극기 들고 광화문에 나간다던 어떤 대학 선배라는 놈이. “비정규직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안 해서, 그런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한 기야~”. 식당의 밥상을 엎을 뻔했다. 게거품 물고 지랄하고, 나중에 전화번호부에서 지워버림. 나이를 처먹고도… 수많은 어린이들의 수많은 인생사에 수많은 사연이 있는 것을 모르는 1만 미터 정저지와의 미친놈이었다)
* 관련 글 : 사계
(내용 추가) 역시, 1970년대의 흔들림이 있음. 봉건적인 일본 사회에서, 노조가 그렇게 반발했다는 것은, 그만큼의 착취 행위가 있었다는 뜻이 된다. 심히 못된 기업이었다는…
“… 미군 PX에 의존하던 고질적인 문제점에 마츠시타 전기 산업, 히타치 제작소 등의 대형 전기 메이커가 오디오 산업에 진출한 것도 있어서, 그리고 1971년의 닉슨 쇼크 이후 실적이 악화되어 갔다… 1980년대에 걸쳐서는 노사대립이 이어졌다… 500만 엔을 뇌물로…이 사건의 책임을 지는 형태로 창업자 사장인 키쿠치 코사쿠가 1974년에 사임했다…. 나가노현 지방노동위원회는 1983년(쇼와 58년) 10월, 조합원의 주장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오디오 붐의 쇠퇴나 디지털화의 추세에 의해 경영이 악화. 1989년에는 영국 PPI(폴리펙 인터내셔널)의 출자를 받아 산하 기업이 되었다. 이듬해 PPI가 파산하였고, 1991년에 홍콩 세미텍 산하 기업이 된다. 그 후도 경영은 호전하지 않고…” (출처 : https://ja.wikipedia.org/wiki/%E5%B1%B1%E6%B0%B4%E9%9B%BB%E6%B0%97)
* 관련 글 : 최상급이라고 하던 Sansui SR-929 턴테이블
한때 한국의 기업과 손을 잡은 타국 기업들중 줄타기를 빠르게 못한 기업들은 거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거나 남아있어도 전성기때 생산하던 제품과 전혀 관련없는 제품들을 생산하며 명맥만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정풍물산과 손 잡은 산스이는 삼성 블루레이 시스템같이 가짜 진공관을 사용하는 미니컴포넌트와 음료수 캔 냉각기, 붐박스 등 이상한 것들을 주로 만들고 있고
인켈과 손을 잡았던 듀얼 saba basf는 흔적도 없네요.
그나마 듀얼은 숨은 붙어있었는지 몇년 전 오디오테크니카의 AT-LP60X랑 똑같아 보이는 CS-329 턴테이블을 80만원 정도에 발매했습니다.
네. 그렇듯, 여러 가지로 안쓰러운 장면을 목도하게 되는데요… 그게 참.
자산=부채 동액으로 인수한 게 아니라 부채는 어떻게든 퉁치고 축소된 자산만 인수하고 한 번 두 번 세 번 돌고 돌면 결국은 브랜드 껍데기만 남고, 마지막에 받은 자는 그 껍데기로 최대한…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돌리니까, 죽은 코끼리의 맛난 것 먹고 나머지 먹고 또 뭘 먹고…
한 줄로, “호랭이가 가죽만 남겨~”처럼 되어 버리고.
과거 빈티지 시절의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한숨이 나오는 장면이 만들어지는 것 같네요. 그다음에는… 과거를 갈구하는 사람에게는 자괴감 같은 것이…
디지털 세상이 되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오디오에 관한 한 1980년대의 Peak점 이상은 초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작사 활동의 강도와 범위, 주제의 포괄성에 있어서요. 가뜩이나 Video가 Audio를 압도하는 세상이 된 데다가…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