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SOONDORI
1970년대, 어떤 기관의 사택이었던 일본 적산가옥(敵産家屋)에서 몇 년을 살았던 적이 있다.
외부 벽은 검은색 타르를 바른 나무판을 겹쳐 붙인 것이었고,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고 냄새도 나지 않는 화장실과 커다란 솥이 거치된 목욕탕이 집 안에 있다는 것과 시원시원 널찍한 다다미방이 신기했다. 점령군으로 들어와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땅 100평? 200평? 토지에, 실평수 30~40평짜리 단층집을 짓는다는 게 일정시대 일본인의 사고로도, 이후 대한민국 사람의 생각으로도 꽤 특별한 사례였을 것이라고 상상해보았으며…
(출처 및 글 : https://livejapan.com/en/article-a0002031/)
일본인들의 현실적인 주거 공간은?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네 집은, 도면을 보면 꽤 넉넉한 편이다. 그러나 장면 그림들을 보면 은근히 답답하고. 바닥 면적은 20평쯤? 2층으로 올렸으나 그쪽은 면적이 작으니 잘해야 총 30~40평 정도일 듯. 그런데 평면 배열과 이층 배열은 면적의 체감에서 큰 차이가 난다. 계단 공간, 계단 밑 창고 공간, 복도 공간, 이것저것 공간 쥐어짜내기를 해도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목욕탕은 꼭 있어야 하고… 어찌해도 좁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음. 짱구 엄마 봉미선 씨가 물건 정리를 제대로 못 해서, 장롱문을 열자마자 뭐가 막 쏟아지는 게 아니라 공간 부족으로 뭘 마구 구겨 넣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출처 및 글 : https://news.mynavi.jp/kikaku/20150424-a002/2)
왜 좁고 답답할까? “땅값이 비싸서”는 경제 활황기 이후의 사유일 것. 바닥에 깔린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막연하게 상상해보자면,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인들은 체구가 작다. 왜놈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처럼 왜소함. (그 작은 집도 크게 보이는!) 국민 몸집을 키우기 위해 뭘 먹였다는 ~카더라 이야기도 있으며… 수시로 지진이 일어나기 때문에 기둥과 보의 길이를 크게 가져가는 것은 공학적으로 불리하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에 다다미방 면적에 따라 세금을 부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즉, 면적 결정은 절세에 중요한 변수. 짱구 아빠처럼 일본 샐러리맨들이 30년~40년짜리 은행 대출로 집을 사는데 마음껏 크게 가져갈 용기가 있을까? 입사한 순간, 짱구 아빠가 평생 벌 수 있는 현금 규모는 확실하게 정해진 것인데? 대부분 목재를 쓰는데 그 재료가 무한정한 게 아니다. 목수를 부리는 비용도 많이 든다. 목재라면… 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의 폭격에 큰불이 나고 동경 등 도시가 홀랑 타버린 것은 가옥이 모두 목재로 지어졌기 때문에. 지진 내성은 아무래도 유연성이 있는 목재가 더 좋을 듯하지만… 어느 날 짱구네 집이 가스 폭발로 완전히 날아간 적이 있다. 토네이도가 스쳐 간 것처럼 완전히. 짱구네 집 건축 시점, 최소한 만화 시작 시점이 1990년인데 여전히 시멘트-철골 구조가 아니었다는 말씀이다.
과거의 모든 것이 하나의 묵시적 관성이 되어 모던한 일본인의 사고에 그대로 투영되었을 것이며… 그런 결과로,
응급 상황 시 발빠른 탈출 전략? 이중창을 쓰지 않아서 겨울에 몹시 춥다고 한다. 그래서 짱구 가족은 다른 일본 가족처럼 코닷쯔( こたつ, kotatsu = 탁자 밑 작은 전열기 + 이불 + 이불 안 공기 대류)를 애용한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코닷쯔는 거실 중앙부에 있는 커다란 장애물. 집안을 더 답답하게 만든다. “겨울만 그렇다 해도… 도대체 그 옆에 뭘 놓는다는 말씀입니까?” 기초 바닥 면적이 작으니까 냉장고나 세탁기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흔히 쓰는 용량의 1/2 수준. 이불 빨래를 하기 어렵고 냉장고는 좁아서 문을 열 수 없고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흔한 800~1000리터급이 영~ 부담스럽다는 일본 가옥 구조. 집이 좁다고 함은 2층 집 밑에 있는 1층 매장도 좁다는 뜻. 그래서 ‘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는 노포 음식점의 실내가 답답하기는 매한가지. 실내가 좁으니까 탁자도 좁고 주방도 좁고 모든 게 오밀조밀.
대비되는 우리나라 단독 주택의 표준은 딱! ‘응답하라 1988’의, 복권을 사서 가족의 인생이 바뀐, 덕선이네 2층, 정환이 집과 같은 구획 구조에 시멘트-철근을 이용하여 건축한 것이라고 보고… (‘갑자기 부잣집’이 된 정환이네 거실이 넓었다는 점은 적당히 무시) 지주 간격과 보 길이 마음대로에, 기술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 보일러 온돌 구조이므로 당연히 걸리적거리는 코닷쯔도 없으며… 어쨌든 평면 중심으로서, 일본처럼 ‘당연히 실내 2층 계단’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래서 뭘?
아기공룡 둘리와 티격태격하는 고길동 씨의 오디오 배치는 전형적인 1980년대 우리네 것 그대로. 고길동 씨의 집도 덕선이 친구 이층의 정환이네와 같은 방식으로 지어진 것. 짱구네 집에 고길동 씨의 것과 같은 시스템이 나오는 에피소드는… 기억하기로는 없다. 20대 후반의 짱구 엄마 봉미선과 30대 짱구 아빠 신영식이 나이 들어 보이는 고길동 씨처럼 오디오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 듯하고, 설사 그렇다고 한들 짱구나 짱아가 오디오 시스템을 가만 놔둘 리가 없으며…
어쨌든 짱구네 집 도면을 보면, 43cm 표준 규격 오디오를 사고 스피커를 좌우로 늘어놓고… 흔히 팸플릿에 멋지게 묘사되는 식의 배치는 어렵다. 더 상상해보면, 짱구네 집을 포함하는 일본 가옥의 가장 넓은 공간인 거실 즉, 다다미방이 미닫이문으로 기타 공간과 분리되거나 합쳐지거나이므로 완벽한 방음에도 애로가 있을 것.
한편으로, 재난 발생 시 빠른 복구를 염두에 두었음인지? 일사분란함, 획일화, 체제화 추종이 개인의 선한 선택인 것으로 조장하는 나라, 그래서 규격 이탈자에 대해 이지메가 극성인 나라에서는 가급적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것을 가지고, 나대지 않고 혼자 놀기를 하는 게 좋다. 이것도 작고, 저것도 작고 그러다 보면 작은 것을 정말 잘 만들게 되고, 거대 야마모토 전함과는 전혀 다른 것을 만드는 세상에 빠져들면서… 밀집형 주택 환경이 그런 혼자 놀기와 겹치면 더더욱 작은 것에 눈을 돌리기에 십상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보았다. 예를 들어, 만화는 공간 포함하는 모든 제약을 벗어던지는 일상의 탈출구이고, 극도로 작은 미니어처 주방 징난감이 판매되고, 초 고정밀 데크 메커니즘은 작은 것에 극도로 집착한 결과물이며…
그리하여 일본 제작사들이 베이비 붐 시대 젊은 처자의 혼자 놀기용 오디오 또는, 그게 아니어도 집이 좁기에 타당한, 최대한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니어 필드형 뮤직센터나 초 공간절약형 미니급 시스템 판매에 집중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그냥… “우리 집에는 풀 사이즈를 놓을 공간이 없어요”가 된다.
여기에 추가할 수 있는 상상 변수로서,
나라는 부자여도 국민이 가난한 나라이기도 하였으니까… 작은 크기로 만들면 생략할 수 있는 것이 많아서 대체로 소비자 가격은 내려간다. 예를 들어 아래 국가 부의 재분배, 빈부 격차를 계량화한 지니 계수(Gini Coefficient) 트랜드에서, 1980년대부터 대한민국과 일본의 증감 추세가 달라지는 게 흥미롭다. (가만 보면, 일본 통계는 제출 빈도가 낮고 그래서 무조건 정확한 게 아닌 듯) 코끼리 밥통 일제는 무조건 좋다고 했는데… 100엔 샵으로 대표되는, 돈 많은 국가의 돈 없는 국민이라면… 허구한 날 30여 년 남은 주택 대출금 상환이 고민인 짱구 아빠, TV 화면 속 짱구네 가족은 그래도 잘 사는 편인 듯. 짱구가 고급 유치원에 다니니까 뭐… 아무튼. (표제부 사진 출처 : https://thetv.jp/program/0000872866/)
(▲ 日本의 소득격차 現況과 示唆點, 丁厚植, 한국은행 조사연구, 2010.02, https://www.bok.or.kr/viewer/skin/doc.html?fn=FILE_201803300738479061.pdf&rs=/webview/result/P0000537/201003)
(▲ 한국의 배분문제 : 현황, 문제점과 정책 방향, KDI 정책연구, 1998년, https://www.koreascience.or.kr/article/JAKO199826259712708.pdf)
* 관련 글 : 아베의 일본이 몰락하는 이유
대한민국과 일본의 어떤 시점 등락은 그렇고… 우리나라의 현재는, 대략 공정 분배 쪽으로 가고 있지만, 아직은 선진국 수준에 미달.
(출처 : https://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