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DATABASE > [오디오의 역사를 만나다] 고려전자 마샬, 박병윤 (4) – About Time

[오디오의 역사를 만나다] 고려전자 마샬, 박병윤 (4) – About Time

글쓴이 : SOONDORI

2022년 말의 어느 날, “액티브 장치가 있는데 그거~이를 물렸더니 소리가 제법 나옵디다. 하하~”하시던, 박병윤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웃으며 대화하고 꼭 다시 찾아뵙겠다고 약속했고, 해가 바뀐 2월이 되어서…

* 관련 글 : [오디오의 역사를 만나다] 고려전자 마샬, 박병윤 (3)

1927년생. 그러면 만으로 97세가 되시는가? 이하는 웃으며 “몇 년만 더”를 이야기하시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국향 제품의 뒷마무리에 몰입하고 계시는 박병윤 선생님과의 사사로운 대화. 과거를 기록하려는 자에게는 절대 버릴 수 없는 대화이기도 하다.

(적당한 생략)

○ 그나저나 왜 국내 오디오사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기록이 없을까요? <이영동의 오디오 교실> 이상의, 경험한 분들이 적는…

■ 글쎄요.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었다고 보고… 기여는 했을지 모르지만, 세계사적으로 봐서 작은 일이었다는 생각도 하고 자기 자랑이 될까 봐… 스피커만 해도 모든 게 1930년대 웨스턴 등 미국쪽 기술 개발 덕분이죠. 전 세계 극장이 한꺼번에, 무성영화가 유성영화가 되면서… 꼭 우리나라가 노래방 붐이 일었던 것처럼…

○ 그러면 영상 문화가 음성 문화를 리딩한 것이잖습니까? 오디오 시장이 죽고 MP3가 나오고 이번에는 디지털적 포맷이 아날로그를 압도하는… 기술적 변화, 문화적 변곡점이 시장의 제품을 확~확! 다르게 하는 게 너무 신기합니다.

■ 정말 대단해요. 어찌 보면 내가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정말 다행이구나. 이렇게 적당한 때 태어나지 않았으면 정말 억울했겠다. 한 2~3년만 더 세상을 보고 떠나면 정말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웃음) 미국에서 이거 기다리고 있어요. (새로 개발하신 ‘3 웨이 Back Loaded Horn 스피커 시스템, K-300 MK III’을 지목)

○ 양산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 그건 시켜야죠. 공장에서 만들고 내가 검사하고 나머지 패킹과 수출은 누가 해주고. 한 20년 전에 디자인이 나쁘다고 아내와 남편이 싸웠다고 해요. (웃음) 그 당시에 만든 것은 귀신같다고. 남편은 소리를 찾는데 아내는 스피커 모습을 보니까…

○ 그… 과거의 쾨헬 K-300 말입니까?

■ 네. 그거 잘 팔렸거든요.

○ 지금 앞에 있는 것은 무광 검정이라 차분한데요? 좋은데요?

■ 일단은 기본 모양은 이렇게 가고 무광, 유광, 무니 목으로 하려고 해요.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게. K-300이 옛날에 1만 불에서 1만 5천 불에 팔렸는데… 목공할 수 있는 데에서 해야 하니까 만들기는 태광해서 했고, 나는 설계를 했고 유니트 납품하고 국내는 자기들이 팔고 나는 해외에 팔고. 국내 것은 좀 싸게 하려고 네트워크다 뭐다 조금은 절약형으로. 역시 돈이 들어가니까 소리가 달라요. (큰 웃음) 태광과는 거래가 많았죠.

* 관련 글 : [제품소개] 마살전자 음향연구소의 2022년형 신제품들

○ 태광 이야기가 나오니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튜너의 디엠퍼시스가 엉망입니다. (한참 부연 설명) 소리가 너무 다른데 수출형을 아무렇게나 국내용으로 돌리고… QA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 태광의 튜너 쪽은 제가 지식이 없습니다. 하여튼 그 양반들이 앰프와 스피커쪽은 잘만들려고 신경을 많이 썼어요.

○ 네. 저도… 태광 몬스 등 특별한 진공관 앰프, 특별한 스피커를 만들면서 나름 진취적으로 활동했다고 생각합니다. 실험 정신이 투철했던 것 같아요. 그라나 유독 튜너만은 그렇습니다. 국내 소비자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었나 싶어요. 실수 아닙니다. 80년대 그것을 산 사람은 원래 그런 줄 알고 좋다며… 그렇겠죠?

(적당한 생략)

■ 저기 있는 캔우드 튜너는 너무 좋아서 쓸 때까지 쭉 쓰려고 하고, 저기 있는 VTL은, 진공관… 맨리라고 아시죠? 납작한 것. 그게 대단합니다. 그 안을 보니까 전부, 레이저를 가지고 저항치를 정확히, 조각하듯 하더라고.

○ 네. 지금도 고급 R-2R DAC은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 그렇게 한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죠.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지금이야 장비도 좋고 하니까…

■ 그 당시에 코스트가 올라가도 되나? 써보고 들어보라고 해. (VTL 관계자 또는 맨리(David Manley) 씨와의 대화였을 것으로 추정함) 그쪽은 녹음실도 있고 마이크고 뭐고 다 개조해서… 파는 마이크는 안 써요. 자기가 다 만들어서. (사무실 이전으로… 연결된 상태가 아니라서 VTL 시스템을 들어보지는 못함) 이사하느라고 정말 정신이 없어요. 잘 정리하고 이사했는데 뭐가 어디 들어있고 아니고… 짬짬이 외국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해서 빨리 튜닝을 끝내자, 그러고 있습니다. 가격 내서 보내고…

* 관련 글 : VTL 진공관 프리앰프와 Ultra Analog DAC

○ 흔히 엔클로저를 솔리드한 것으로 상정하지 않습니까? 무한 배플 이론에 차원을 격리하는… 돌로 만들고, 쇠로 만들고. 그런데 반대로 엔클로저의 진동을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있고요.

■ 강성과 물리적 특성은 일치하지 않아요. 계측한 것과 느끼는 것은 흔히 다릅니다.

○ 그게 다 오묘한 아날로그라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도 정답을 모르는 것이죠.

■ 예, 예, 맞아요. 감성이 중요하죠. (웃음)

○ 그런데요. 제가 약간 편향적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기초 계측을 한 다음에 그것을 바탕으로 감성적인, 경험적인, 전문가적인 플러스알파를 가미하는 개발 방법론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스피커 제품이 꽤 있던데요?

■ 예, 예, 맞아요. 맞아요. 그게 현실이에요.

○ 그게 왜 현실인가요? 저는 몇십만 원짜리 Ommi 마이크 세트라도 써서 계측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게 해야 되요. 기준이 없으면 흔들린다고.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고… 그렇게 안 하는 것은 잘못이에요. 그런데, 솔직한 이야기로 귀찮거든. 거기까지 할만한 실력이 없을지도 몰라요.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해요. (웃음) 자, 오셨으니까… 중간쯤 튜닝한 것으로 한 곡만 들어볼래요?

(적당한 생략, 하단 영상 참고)

○ 일정시대에 태어나셔서 일본어 잘하시고, 지난번 말씀해주신 배경 그대로 영어도 잘하시고… 심지어 라틴어에 독일어도 하신다고욧?

■ 의학 공부를 했으니까 라틴어, 독일어를 하게 되었네요. 지금은 쓰지도 않는 언어를 하게 되었어요. (웃음) 이제는 다 잊어버리고… 아깝습니다. 억울하고… 햐~ 내가 바보처럼.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는 시절까지 살고 있는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 네이버는 경쟁 상대가 안 되는 구글을 생각하면, 네. 현재는 텍스트 입력으로 모든 정보를 찾을 수 있죠. 검색창에 마이크 아이콘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다가 ‘챗GPT’라는 음성처리 기반, AI 기반 신형 검색 수단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모든 게… 결국은 소리로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소리는 위대하다” 말하고 다닙니다. (웃음)

■ 그래요. 이렇게 큰 변화를 내가 체험하는 것, 미리 죽지 않고 그런 것을 접한다는 것이 너무 대단하고 행복합니다. (웃음) 그리고 육체적으로는 약해졌지만, 아직까지 정신이 살아있는 게 다행이고 좋습니다.

○ 한동안 아프셨지만, 극복하셨고 오늘도 본인 좋아하는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대화해보면, 박병윤 선생님은 정말 똑똑한 분이시구나 그리고 내일모레면 100세가 되시는데… 햐~ 저는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웃음) 아내와도 이야기를 합니다. 같은 박 씨에, 내가 좋아하고 따라가고 싶은 분이 계시다. (웃음)

■ 현재 상태를 몇 년만 더 유지하게 해달라고 중얼거려요. (큰 웃음)

○ 100세는 넘기셔야죠? 제 롤 모델이십니다. (웃음)

■ 한번은 강남의 어떤 세무서에서 나오라고 해요? 갔는데… 바지 사장 아니냐고 의심하더이다. 나이를 보고는, 전자계산서를 보니까 수출을 하고 수입을 하고 판매도 하고 뭘 하고 그러는데 이상하다 이거지. 그래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었더니 그쪽 과장하고 직원하고 다들 부러워하더라고. (큰 웃음) 다음에 일이 있으면 자기들이 내 사무실로 직접 찾아뵙겠다고 하고. (큰 웃음) 요즘 100세 시대인데 당신들은 나보다 훨씬 더 유리하지 않냐? 퇴직 후 할 것을 차근차근 준비하라고 했지요.

○ 네. 60대에서 새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늙어서도 끈을 놓치 않으려고 하는, 노욕에 찌든 사람들, 정치 모리배들이 많은데요. 그 시점 이후로는 본인을 위해서,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살다가 가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 일을 끝까지 할 여건이 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7년 단골 식당으로 이동. 적당한 생략)

■ 탄노이가 영국에서 큰 야외 행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몇만 명이 올지 모르는 상태이고 탄노이는 PA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연락이 닿았고 해법을 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칼럼 스피커를 만들어보내고… 행사가 잘 끝났습니다. 메이드인코리아 제품이 나간 것인데… 멀리서 찍으니까 제대로 안 보였을 것이고. 하여튼 그래서 영국에서 알려지게 되었고… 한번은 영국 지하철에 대형 화재 사건이 있었어요.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영국 정부하고 런던시가 안 되겠다 싶어서 불에 타지 않고 물에 젖지 않는 스피커가 있느냐? 그런데 마침 88올림픽 때… 삼성동에 거… 큰 미국 계열 호텔이 있지요? (인터콘티넨탈 호텔로 언급) 인켈이 거기 공사를 맡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스피커 스펙이 정말 엄격해서, 방수에, 방염에… 그것을 공사 기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그때 알게 되었잖습니까?

○ 큰일 났네요. 담당 직원의 큰 실수로군요.

■ 그렇죠. 패널티가 무섭더구만. 그래서 조동식 회장이 연락을 했어요. 큰일 났다고. 일반 스피커를 달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지? 그러기에 간단한 일이다, 미국 회사에 발주를 내서 달면 된다고 했지. 미국에 SOS를 쳐보라고 했는데… 문제는, 1년 전에 주문해야 순서대로 만들어준다는 거에요. 그래서 인켈이 직원들 지원하고 돈도 지원하고 내 쪽 직원들과 함께 개발을 한 적이 있습니다.

○ 네. 이판사판이었군요.

■ 그것 때문에, 만들어가지고 우리나라 시험검사소에 갔더니 장비도 없고 기준도 없고. 그래서 다 만들어주고 합격을 해서… 증명서를 받아서 호텔에 갖다주고 납품하고. 그런 상태에서… 미리 준비한 것이니까 영국에서 연락이 왔을 때, 딱 아다리가 맞아서 처리할 수 있었지요. 수량도 많고 금액도 크고. 그런데 내가 직접 납품을 못 한다. 그쪽 법과 절차 때문에 영국 회사가 해야 한다. 그러더라고. 시험도 받고. 그 비용만 4천만 원(= 그 시절의 몇억 가치)이에요. 그래서 거래하던 영국의 어떤 회사에게, “내가 독점권을 줄 테니까 네가 다 알아서 해라”라고 했어요. 다 끝나서, 영국 시험소에서 발행하는 계간지에 “저 멀리 한국의 어떤 쪼끄만한 회사가 깜짝 놀랄 만한 것을 만들었다, 놀랍다”라는 글이 올라왔다고 해요. (웃음) 탄노이 주관 행사와 영국 지하철 건이 되고 나니까 구라파 시장에 소문이 쫙 나더라고. 그래서 내가 장사를 잘했다고.

○ 그 방수, 방염의, 오래 기다려야 하는 미국 회사와 달리 빨리 대응하고 충분한 성능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 어떤 때는 그런 게 다 행운이라고. 조동식 회장 때문에 고생을 했지만, 얻은 게 많았다고. 직원들에게도 인켈이 큰일 나겠다, 잠 안 자고 해주자 그랬어요.

○ 그러면 인터콘티넨탈에 가면 그 스피커를 볼 수 있습니까?

■ 어. 거기는 아직도 쓰고 있어요. 거기가 87년에 완공을 했으니까…

(적당한 생략)

○ 최초 선생님과 인터뷰를 하고 여러분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청하면, 딱히 협조적이지 않습니다. 기록을 남기려는 자 입장에서는 그런 게 좀 안타까운데요. 네… 그러나 또… 낯을 가리는 저 역시 그런 인터뷰 요청이 오면 무조건 거절할 것 같기는 해요. (웃음)

■ 기록해두면 다른 세대에 도움이 될 꺼라고 생각하요. (웃음) 나도 먼저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 물어보면 그것만 대답하고…

(이어진 대화에서, 여의도 63빌딩과 장충동 신라 호텔, 4호선 PA 스피커를 납품하셨다는 언급이 있었다. 한의사 아들과 프랑스에서 자리를 잡은 손자, 음대를 졸업하셨다는 아내분의 이야기까지)

■ 오늘 내가, 너무 내 자랑이 많았네.

○ 아닙니다. 그런 자랑을 해주셔야 후대에… 이런 분, 저런 분이 계셨다는 것을 후대가 알게 되지요. (큰 웃음)

(▲ 아가씨가 나오는 영화의 내용은 그냥 그렇고… 그러나 제목은, ‘About Time’이라는 문구는 계속 눈에 들어왔다. 어떤 이와 모든 이의 흘러간 시간에 대하여…)

[ 관련 글 ]
[오디오의 역사를 만나다] 고려전자 마샬, 박병윤 (5) – 그리고 영국 TDL과 아남전자
[오디오의 역사를 만나다] 칼라스 케이사운드랩, 김상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