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SOONDORI
2020년, 서울시 금천구청 지역경제과가 상당히 좋은 일을 했더라.
* PDF 소개 자료 : 2020년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 특별전-특별한 보통날
확실히 흑백 사진은 뭔가 다른…
* 관련 글 : 국산 오디오를 만드는 장인들(9), 진선오디오
지역 역사를 기록하려는 이런 자그마한 노력이 구청장 선거나 구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휘청거리지 않기를 기원함.
○ 어렴풋, 짐작할 수도 없는 삶.
“… 사람들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변화를 ‘천지개벽’이라고 부른다. 굴뚝 공장이 즐비하던 곳에 빌딩형 공장과 고층 빌딩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디지털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180도 바뀐 구로동과 가산동, 가리봉동만큼이나 공단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잊혀져 버렸다. 개발 독재 시대 국가의 공식 호칭은 ‘산업 역군’이었지만 실제로는 공돌이, 공순이로 불렸던 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한 지붕 열 가족, 근로자들이 사는 집] 1970~1980년대 구로공단[정식 명칭은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에서 일했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서울의 환상을 좇거나 남자 형제의 학비를 벌기 위해 상경한 십대 여성들이었다.
이들에게 공단은 고된 삶의 터전이었다. 구로공단 노동자로 일했던 배옥경[가명, 1965년생] 씨는 “오랜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하루 18시간씩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복지 혜택 또한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전라북도 정읍에서 나고 자란 작가 신경숙 씨는 1970년대 말 상경해 구로공단에서 일하면서 저녁에는 영등포여자고등학교에서 운영하는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녔다. 그의 잠자리는 가리봉동의 속칭 ‘벌집촌’이었다.
신경숙 작가의 체험은 소설 『외딴방』에 그대로 녹아 있다. 소설 『외딴방』에서는 당시 벌집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서른일곱 개의 방이 있던 그 집, 미로 속에 놓인 방들, 계단을 타고 구불구불 들어가 이젠 더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작은 부엌이 딸린 방이 또 있던 3층 붉은 벽돌집.” 실제 구로동과 가리봉동 일대에 퍼져 있던 벌집은 외관상으로는 단독 주택이지만 호당 10~30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독특한 내부 구조를 띠고 있었다. ‘벌집’이란 이름도 이런 작은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출처 : http://www.grandculture.net/guro/toc/GC030A020102)”
○ 마침 지나가는 길이라면… 2013년에 개관한 오프라인 전시관의 위치는,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동 벚꽃로 44길 17.
* URL : https://gchistory.kr/
○ 바쁘면, 가지 않아도 됨. 가상현실 기술 덕분에.
* URL : https://archive360.kr/archive360vr?vid=41109&place=place1&position=1.918,-11.739
(▲ 곳곳을 클릭하면, 소개 내지 인터뷰 영상이 나온다. 다소 소박하거나 초라한 구성에, 혹여 “애들 장난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면, “예산을 좀 많이 주시덩가!”라고 마음을 바꿔야…)
* BKID design brief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