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SOONDORI
<6080 추억상회> 방문 시, 엘리베이터 앞에 대충 놓여, 아니… 아무렇게나 쌓여 있던 라디오.
2 밴드에, 건전지 DC 6V와 100V AC 겸용에, 출력 3W에, 튜닝 상태와 배러~리 상태를 표시하는 작은 아날로그 미터에, 무려 AFC 기능과 톤 컨트롤이 기본 제공되는, 1970년대의 아주 모범적인 사양을 갖고 있지만, 핸드 캐리 구조물이 가출한 상태.
불구 국산 빈티지. 누가 찾을까 싶었다. 그래서 불쌍한 생각이…
(▲ 흘러간 시간을 생각하면, 안테나가 부러지는 게 당연할 수도. 누군가 엉뚱한 2단 제품을 달아놓으셨고…)
뭐 어쨌든, 훗날 금성사가 흡수한 서통전자가 제조하고 금성사가 판매했다는, 작은 역사의 단서가 후면 스티커에 기록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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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istic MC-600 스피커 시스템, Made in Korea
금성사 RK-1012 플립형 시계 라디오
새한전자 RD-100A 플립형 시계 라디오, Made In Korea
[이한구의 한국 재벌사] LG그룹 편 2화. (CNB저널, 2012.08.20. 출처 : https://m.weekly.cnbnews.com/m/m_article.html?no=108929#_DYAD
“… 목적으로 럭키폴리케미칼(주)을 설립했다. 한편 이 무렵에는 전기전자 부문에 대한 다각화 작업도 활발히 전개했다. 1970년 8월에 금성사는 일본 알프스 전기와 합작해서 금성 알프스전자를 설립하였으며, 12월에는 금성전기를 설립하였다. 금성전기는 금성사와 금성통신으로부터 반송통신장치, 무선통신분야의 시설 및 영업권을 인수받아 당시 미개척 분야였던 이 부문을 전문화시킨 것이었다.
1971년 2월에는 금성전공을 설립하여 전력 및 통신용 전선, 케이블 판매업을 영위하다가 1975년 2월에 희성산업으로 개명하고 사업 종목에 구룡광산 운영을 추가하였다. 희성산업은 1978년 4월부터 그룹 내 홍보, 선전을 전담하는 하우스 에이전시(House Agency)로 재출발하였다.
1971년 6월 22일에는 금성사의 투자로 설립된 부품 공급 전담사인 성음사를 해체하고 대신 일본 포스터전기와 50:50의 비율로 합작하여 자본금 1억3000만 원의 금성포스터를 설립하였다. 라디오 및 TV용 스피커와 부품 등을 생산하여 미국, 일본 등지에 수출할 목적으로 설립하였는데 생산 능력은 연 30만 개였다.
1974년 6월에는 일본 후지(富士)전기와 합작하여 금성계전을 설립하였다. 산업용 전기기기사업의 전문화를 위해 금성통신에서 분리, 설립한 것이다. 1976년 1월에는 서울 중구 도동 1가 3에 있는 삼주빌딩을 대우그룹으로부터 매수하여 그룹 사옥으로 활용하였으며 2월에는 금성정밀을 설립하여 정밀기계 분야에도 진출하였다.
1978년 5월에는 에스컬레이터 등 승강기류 및 전동공구를 생산하던 서통전기를 인수하여 신영전기로 개명하고 승강기를 비롯한 중전기기 분야에 참여하였다. 또한 금성사는 서통그룹의 서통전기를 비롯한 서통전자, 서통정밀 등 3사의 주식 316만 7900주를 31억 3500원에 매입하였다. 일본 미쓰비시(三菱)전기와 미쓰비시(三菱)상사가 서통전기 주식의 각각 25%와 9.31%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금성사는 미쓰비시 측 지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인수하였다.
서통전자는 인수 직후 희성전자로 상호를 변경하여 1년간 운영하다가 1980년 7월 4일부로 해산하였고 서통정밀은 인수 직후 해체되었다. 1978년 6월 2일에는 금전등록기 전문생산업체인 서흥전기의 발행주식 중 45.2%인 14만 2831주를 1억 5639만 9945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금전등록기 사업 전망 불투명과 재무구조 악화로 1982년 12월에 해체하였다.
또한 1979년 9월에는 금성반도체를 인수하는 등 서서히 첨단산업 시대를 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