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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앞잡이들이 설치는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희미한 빈티지 오디오 세상에서

글쓴이 : SOONDORI

광.복.절.

한반도에 전쟁이 나고 10만 명 난민이 몰려오면 기총소사하겠다는 일본 우익의 망언에, 인재를 빼가는 갑작스러운 의대 정원 확대와 R&D 예산 삭감의 겹치기로 대한민국 기술 발전에 항구적인 지연인자로서의 큰 상처를 만들고 그럼으로써 몰락 중인 일본에 반사 이익을 주려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의심하게 되는 어떤 집단의 황당하고 못된 행태에, 광복절 즈음에 뭔 개소리를 지껄이던 놈의 작태가 겹치는 이 순간,

“느츠팔노마”

뭐가 오른쪽에 있다는 느그들은 그냥 일제 앞잡이 집단인 게다. 일본의 자연스러운 몰락에 대해 그들의 극우 집단이 자국 내 혐한의 조장과 대한민국 일제 앞잡이들을 원격 조정하여 해결하려고 하니… 헛! 스스로 잘할 생각은 안 하고 상대를 끌어내려서 비교 우위를 맞추려는 심뽀는 도대체 무엇인지? 예감했던 그대로, 독도를 내어줄 기세. 2차 한일 합방의 기세. 대한민국은, 일본이 아닌 일본제국주의에 결탁한 자들에 의해 하루하루 침몰하고 있다.

후~!

그러고나서, PA 앰프를 만드는 가락전자, 평범해 보였던 그곳의 과거사를 다룬 2020년 기사를 읽으면서, 이 범생은 잠시… 정신줄을 부여잡기.

 

장병화 | 가락전자 회장

​친일청산이 곧 오늘의 독립운동
아버지 대 이은 독립군 되어 통일의 그날까지

홀어머니 슬하에 쑥과 칡뿌리로 허기를 달래며 가난을 원망했다. 배불리 밥 한 그릇 먹는 게 소원이었다. 까까머리 중학생은 도둑기차를 타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전축을 만드는 공장에 취업했다. 경력과 실력이 쌓여 더 이상 배곯지 않았을 때,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독립군 아버지는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지만, 광복을 맞이한 조국에서 총살당했다. 청년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독한 가난이 결국 친일의 역사에서 비롯되었음을. 그렇게 독립군의 아들은 독립운동의 대를 이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후세에 진실을 전하는 일, ㈜가락전자 장병화 회장이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를 15년 동안 이끌고 있는 까닭이다.

# 인생 1막. 지독한 가난 속에서 아버지를 지우다

열아홉 나이에 고향 신의주서 압록강을 건너 만주 광복군을 찾아갔던 아버지 장이호 선생은 해방이 되면서, 서주지구 군사특파원단으로 파견돼 동포들의 생명과 재산보호 임무를 수행하다 1946년에야 귀국한다. 이후 백범선생의 한국독립당 활동했기 때문에 일제 앞잡이였던 사찰계 형사들에게 온갖 시달림을 받는 등 그 삶도 순탄하지 않았다. 그리고 6.25 전쟁이 나고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거짓 방송에 속아 피난가지 않았던 아버지는 그해 9월 25일, 성북경찰서 뒤 돌산에서 인민군에 의해 총살을 당했다. 조국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 쳤지만 이승만에 속고 인민군에 죽은 우리 시대의 아픈 희생자였다. 그때 어머니와 형제는 운 좋게 살아남았고, 그 대가로 끔찍한 가난과 싸워야 했다. 이후 부산으로 피난가고, 다시 강릉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외갓집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중략)

그는 현재 가락전자 회장이다. 한민족의 얼이 담긴 우리 가락을 소중히 생각하고 이어가겠다는 일념으로 1977년 창업한 후 43년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100건이 넘는 특허를 출원했고 국내뿐 아니라 독일, 미국 등 2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30여 년간 음향설계, 컨설팅, 전문시공 등의 경험을 통해 음향·영상 분야에서 전통성과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평생 음향 사업을 해온 그가 기술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술적 감각이다. 소리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청취자가 원하는 소리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는 해답을 현장에서 찾았다. 다양한 현장에서 고객들을 직접 만났고, 고객의 의견에 경청했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기 위해 전문서적을 탐독했다.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했고, 독립군의 아들로서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걸었다.

“가락전자의 사훈이 ‘바른경영, 미래창조’입니다. 짧은 시간에는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가장 큰 자산은 신용이며 정직이에요. 험난한 파고를 넘으며 43년간 꿋꿋하게 지탱해온 건 아버지의 영향이 컸어요. 아버지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강한 의지와 자신감이 생겼고, 원칙적이고 올바른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타 생략)

 

* 원본 글 URL : 월간 순국, 향기나는 삶 이야기 

독립군의 피가 이어진 가락전자라…

* 관련 글 : 어떤 국산 빈티지 오디오, NANTA

대한민국은 큰 바다와 같다.

시간이 지나면, 낙차가 큰 만큼의 더 큰 반동으로 모든 게 다 제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 게다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음. 삶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것들이… 뭣도 모르고 저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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