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SOONDORI
삭카린(Saccharin)은 원유/툴루엔에서 뽑아낸 인공 감미료. 카라멜(Caramel)은 설탕 + 우유를 ‘달고나’ 직전까지 반쯤 태우기.
마트에 갔더니, 우연히 뭐가 보였는데… 삭카린 5 프로짜리를 뭐라고 하고, 30 프로짜리 제품명은 뭐라고 하더라.
곧바로 삼성 이병철의 삭카린 밀수 사건과 어떤 흑백 사진이 떠오름. 박정희 개입설도 있었고… 오늘날의 삼성과 다른 과거의 삼성은 그런 기업이었다.
걸~죽한 카라멜은 자장면에도 들어간다고 하고. 일본 모리나가 표 고급 카라멜, 국산 이런저런 카라멜도 생각나고.
두 종 빈티지 식품첨가물에 대해서는,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어떻게든 식당 음식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참 신기하다.
한편으로,
요즘 표준어는 ‘삭카린’이 아닌 ‘사카린’이고 ‘카라멜’이 아닌 ‘캐러멜’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삭!’을 힘주어 발음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그 시절에 누가 캐러멜이라고 했냐? 웃기시네…”
천우식품제조장이 표기한 ‘카라멜’이 빈티지的 정답.
○ 1940년 6월 17일 동아일보 기사. 그 시절에도, “비밀히 사용하던 삭카린…”이라고 표현했다. 따로 이유가 있었을 듯.
○ 다음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삭카린 밀수에 대한 정의.
1966년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가 정부 정치자금과 관련해 건설자재로 가장하여 사카린을 대량 밀수입한 사건. |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는 미쯔이 물산에서 상업차관을 도입하여 울산에 요소비료공장 건설을 계획했다. 당시 이 사건에 깊숙이 관여한 이병철의 아들 이맹희의 회고에 의하면, 공장건설은 정권과의 합의사항이었다. 즉 1967년 대선준비에 대한 강박관념과 농촌인구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비료공장 건설은 훌륭한 홍보용 업적으로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 조건을 수락하는 대신에 이병철은 국민, 정부, 언론이 비료공장 건설을 지원할 것, 정부가 책임지고 10억 원의 은행 융자를 해줄 것, 공장건설에 필요한 인허가 등을 신속히 해줄 것, 공장건설과 관련하여 한 푼의 정치자금도 제공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미쯔이 물산과의 차관교섭과 도입과정, 조건협상은 이병철이 직접 담당했고 정부는 지불보증을 서는 것으로 지원했다. 차관의 내용은 비료의 연생산량 33만 톤, 외자 4200만 달러 2년 거치 8년 상환, 이자율 연리 5.5%였다. 당시 이자율이 보통 6∼6.5%였음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히 저리였기 때문에 삼성특혜설이 돌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비료는 차관 외에 사카린 원료인 OTSA를 비롯하여 당시 금수품이었던 양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등을 건설자재로 속여 대량으로 밀수하고 이것을 암시장에 되팔아 엄청난 이익을 보았다. 이 사건은 한·일 양국의 대재벌이 밀수를 간여했다는 점에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3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