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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오디오 생활

글쓴이 : SOONDORI

구 소련도, 미쿡도 학을 뗀 나라. 여성이 히잡을 안 썼다고 발광하고, 공공장소에서 음악 듣지 말라며 발광하고, 라디오 방송국이고 뭐고 싹쓸이 정리하겠다며 발광하고… Afghanistan은 (피아 구분하지 않는 조건에서조차) 상당히 웃기는 나라이다.

○ 차이나는 CHINA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 아직은 포켓 라디오가 있고 전자제품 유통 공간이 있고 스마트폰을 쓰고… 그리고, 중국의 일대일로 흔적이 찐~~ 하다고.

“… 굴 아크바르의 작은 가게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전선, 온갖 크기의 플러그, 그리고 수많은 연장 코드로 가득 차 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이 중국에서 수입되며, 카불의 번화한 나데르 파슈툰 시장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가전제품과 전자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멀지 않은 곳에, 전쟁으로 파괴된 아프가니스탄 수도 한가운데에 반짝이는 10층짜리 유리와 벽돌 잠후리아트 병원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베이징은 병원 건설을 위해 2,500만 달러와 중국인 노동자들을 지원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무역을 위해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비자를 받기 위해 매일 중국 대사관에서 긴 줄을 서 있습니다. 미국과 NATO 동맹국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중국은 여러 주요 투자와 재건 사업을 통해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해 왔습니다. 2007년, 중국은 카불 남동쪽 아이낙에서 35억 달러 규모의 구리 광산 개발 계약을 체결하며 아프가니스탄 최대 외국인 투자자가 되었습니다… (출처 : NBC 뉴스, https://www.nbcnews.com/id/wbna38076136)

○ 라디오와 라디오 방송 학대 정책

가난한 곳의 무식한 정부는 대체로… 체제 선전을 위해 라디오 보급과 라디오 방송의 지원에 적극적인데, 그쪽 집권 무리는 확실히… 정신 이상자 집단.

“… “라디오에 대한 추억이 많아요. 라디오 청취에 제한이 있던 시절이 있었죠. 라디오를 들을 때는 한 사람에게 감시를 맡겼어요. 비밀리에 들었죠.” 와르다크 주민인 망갈 씨가 말했다. “오래전 일이에요. 제가 걸음마를 떼던 시절이었죠. 우리 마을에 라디오 장치가 들어왔는데, 방송을 들으면서 라디오 장치 안에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와르다크 주민 압둘 살림이 말했다.

공화국 정부가 붕괴된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최근의 정치적 변화는 아프가니스탄 언론의 라디오 부문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라디오 자한은 8월 이후 운영을 중단한 수십 개의 라디오 중 하나입니다.

라디오 자한의 대표 모사와르 라시크는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라디오 자한이 6개월 이상 방송을 중단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국 라디오 방송국의 약 70%가 문을 닫았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현재 상황으로는 방송 프로그램 운영이 어려운 것이 그 이유입니다. 반면 정부는 라디오 방송국에 세금을 징수하는 것을 고집하고 있습니다.”라고 잠자마 라디오 방송국장 샤피울라 아지지는 말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이슬람 에미리트가 8월에 집권한 이후 300개가 넘는 다양한 종류의 미디어 기관이 문을 닫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독립 언론인 협회의…” (출처 : TOLO 뉴스, https://tolonews.com/afghanistan-176703)

○ 먼 옛날, 2010년에는… 

표제부 사진. 그때는 나름 많이 노력했던 모양. 2010년이면… 1989년에 소련이 물러났고, 2001년 911 사건 + 탈레반 + 어쩌고 저쩌고 미쿡이 진입했다가 2021년에 물러났으니, 정신 이상자들의 통제권이 조금 약화되었을 시점이다.

“… RFE의 라디오 아자디(Radio Azadi)는 전국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에게 태양열 수동 라디오 2만 대를 거의 모두 배포했습니다 . 9월 17일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특히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라디오가 뉴스를 접하는 유일한 수단인 농촌 및 외딴 지역의 뉴스와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표제부 사진 포함 출처 : AP 통신, Radio Free Europe/Radio LIberty, https://www.rferl.org/a/2215974.html)

아프가니스탄 외 절대다수 수니파와 이란? 소수 시아파의 반복 대립을 본 마호메트는, 하늘 나라에서 펑펑 울고 말았을 듯. 도대체가 끝이 없음. 세상 사는 게 힘든, 그들의 삶은 정말 딱하다.


오디오 생활이고 라디오고 뭐고… 그들의 삶이 개판 오 분 전이 된 배경은,

“…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끝은 시작과 똑같았다.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결과가 무엇인지 전혀 확실치 않았다. 2001년 당시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4대의 여객기가 피랍되고 5,000여 명이 사망한 9/11 테러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곧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역시 한 달 만에 급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1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수행한 작전은 9/11 이전에 이미 진행 중이던 미국의 대외 정책과 놀라울 만큼 일치한다. 사실 대(對) 아프간 공작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1978년 지미 카터 정권 때 시작되었다.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 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를 비밀리에 지원한 공작을 두고 다음과 같이 변론하였다:

1979년 7월 3일 카터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의 친소 정부에 대항하는 반대파들에게 비밀 원조를 제공하는 첫 번째 명령에 서명하였다. 바로 그날 나는 대통령께 편지를 보내 반대파를 지원하는 것이 소련의 개입을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해 드렸다…(중략) 비밀공작은 탁월한 전략이었다. 소련을 아프가니스탄이라는 함정에 끌어들인 것이다… (중략) 베트남 전쟁 같은 경험을 소련도 겪게 할 기회였다… (중략) 탈레반의 몰락과 소련의 몰락, 그깟 성난 무슬림 몇 명과 동유럽의 해방 및 냉전 종식 중에서 세계 역사에 무엇이 더 중요하겠는가?

아프간 무슬림을 단결시켜 소련군에 맞서 싸우게 만든 CIA의 공작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85년 이후 소위 “레이건 독트린”이라고 알려진 정책은 소련 전투기 타격에 효과적인 스팅어 미사일을 제공하는 등 원조의 양과 질을 크게 증가시켰다. 미국은 약 35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아프간 이슬람 무장 조직에 투자하였다. 1989년 소련군의 철수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무기 원조를 종료하였지만 탈레반을 비롯한 이슬람 조직과의 전략적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였다. 미국의 여러 전략가는 탈레반을 지원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아파에 적대적인 정권을 확립하는 것으로 이란의 역내 영향력을 크게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작은 아흐메드 라시드의 저서 <탈레반>에 잘 나와 있다. 라시드는…”  (출처 : https://www.goisc.org/koreanblog/2021/9/27/-)

위 내용은 널리 인지되는 통설이다.

그러니까 누구는 “미국-소련의 대립 때문에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혼란이 생긴 것이다”라고 표현한다. 똥을 싸고 똥을 안 치우는 영국의 작태이든, 주저앉게 될 똥을 미리 싸버리는 미국과 소련의 작태이든… 트럼트 덕분에 가속되고 있지만, 미쿡의 몰락은 예정된 수순이니 그렇고, 모든 조건에서 똥 무더기가 되어버린 그 나라만 불행한 것.

2010년에 무상 보급 라디오를 받고 좋아하는 두 아이가, 지금도 살아있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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