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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CD-100 CD 플레이어 실물 사진들

글쓴이 : SOONDORI

“고맙습니다” 2023년 5월 7일에 김동오 님으로부터…

SONY CDP-101/CDP-11S CDP, GCD-606 등 금성사의 극초기 CDP, 삼성전자 소노라마 크로이처 K-800 컴포넌트 시스템과 그것에 속한 삼성전자 CD-100 CDP의 상호 연관성을 추적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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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궁금하지 않을 것 같은, 어찌 보면 전혀 쓸모없는 국산 CDP의 과거사라는 것은… 그래도 이런 뜻 모를 탐구가 너무 재미있다.

■ 전체를 바라보기

금성사 디자인은 차분하고 고전적이다. 삼성전자 디자인은 Colorful의 젊음에, 활주로에서 비상하는 느낌.

(▲ 삼성전자 CD-100. ▼ 금성사 GCD-606)

■ 위를 바라보기

양자에 있어서, 픽업과 트랜스포트가 같고 아날로그 보드의 크기와 형태는 살짝 다르다. 중앙 격벽 브라켓과 PCB 보드가 이격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삼성전자 쪽이 금성사 쪽보다 늦은 시점의 것인 듯. 아니면 넓어진 가로폭에 소니 보드를 그냥 얹은 것이고 금성사 보드는 가필? 다른 버전의 보드 사용?

(▲ 가로폭이 약 43cm인 삼성전자 CD-100. ▼ 약 43cm 가로폭의 금성사 GCD-606)

(▲ 가로폭이 335mm인 소니 CDP-11S의 내부. 출처 : https://www.audiovintage.fr/leforum/viewtopic.php?t=7480)

(▲ 아하? 꼼짝없는 1985년 7월! 83년과 85년의 격차는 글 하단부에서 정리해보기로 하고 일단, Pass)

■ 밑을 바라보기

흔히 CDP 밑판에 운반용 고정 나사가 있기 마련인데 초창기 소니 CDP에는 없음. 나름 내충격 대책이 충분하다는 뜻이려니 한다.

(▲ 삼성전자 CD-100. ▼ 금성사 GCD-606. 양쪽 제어보드에서 핵심 LSI 조합이 바뀐 것 같지는 않다)

(▲ 금성사 GCD-606에서는 58.9를 적어 놓았는데 CD-100에서는 47.3이라고 한다. 뭘까? 조립 라인에서 무엇을 조정하고 기록해 둔 값일 듯. 전압은 아니겠고 47.4오움이거나 47.3mA?)

(▲ 극초기에 공히 사용된 SONY KSS-100A 픽업. 그렇게… 픽업과 트랜스포트는, 삼성전자 CD-100 = 금성사 GCD-606 = SONY CDP-11S)

* 관련 글 : 금성사 GCD-606 CDP 탐구하기 (1), 최초 관찰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1) 지난 글에서, 다음 가설을 세우고 에라이~! 한 표를 던졌었다. ‘1985년 7월 제조’라고 적혀 있으니… 최소한 그 이전 시점에 소개됨. 이제는 그것으로 끝!

“<시스템 K-800>이 1983년~1984년에 태어났다”에 한 표… ‘스테레오 뮤직’ 광고물 코멘트와 같은, 완전히 때늦은 1987년 이후가 아니고…”

2) 다 좋은데… CD-100의 최초 소개 시점, 1983년과 CD-100이 포함된 크로이처 시스템의 소개 시점, 1985년의 격차인 2년, 보수적으로 생각해서 1년쯤이 계속 아리송하다.

– 삼성전자 CD-100과 크로이처 소속 기기는 한 꾸러미로 디자인된 것.
– 1982년 10월에 소니가 포문을 연 이후로 몇 년 동안, 글로벌 오디오 세상은 불난 호떡집이었으니… 영리 기업 삼성전자가 마땅히, 금성사처럼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CDP를 만들고, 최대한 빠르게 제품을 공개했어야 한다.
– ‘이른 시간’이라고 함은 도시바/야마하 솔루션이 나돌던 시점의 1~2년 전인 1983년~1984년이다. 그래서 금성사 GCD-603/GCD-605 소개 시점은 1983년.

삼성전자가 그렇게, 재빨리 CD-100을 만들기는 했는데…

크로이처 K-800이 완전히 준비될 때까지 창고에 처박아 놨다가 1985년경 다시 꺼냈다? 그냥 뭉그적거리다가 1~2년 후 하룻밤만에 CDP도 만들고 크로이처 꾸러미도 만들었다? 더 황당한 생각으로… 사실은 일종의 타협점인 1984년에 이미 CD-100이 포함된, 굳이 크로이처라고 하지 않았던 소노라마 시스템이 판매되고 있었다? 협소한 국내 시장을 생각할 때 분명히 해외 수출 건이 상정되었을 것이고 실제로 몇만 대를 만들는데 어찌하다가 계약이 파기되었거나 클레임이 걸려서 그 뒷정리에 1~2년을 허송세월했다? 목이 뻣뻣해진 소니가 “다시 줄을 서세요!” 부품 부족으로 더 기다리라고 했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것이 아니므로, 더 따지려고 하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것 같으니까 상상은 여기까지만.

다만, 삼성전자의 CDP 출시가 금성사보다 늦었다는 사실은 적어 두고, 완성된 CD-100과 크로이처 K-800 시스템이 1984년 이전에 존재했고 1985년부터 크로이처 서브 브랜드가 대중에게 홍보되기 전, 불상의 사유로 장시간 대기하고 있었다에 한 표 던진다. 생산 라인 준비만 해도 1년은 전광석화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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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셀프 질문을 던진 글, “삼성전자 크로이처 K-800 시스템은 언제 태어났을까?”에 적은 내용.

삼성전자는는 훗날 SOH 두문의 픽업을 양산할 만큼, LG는 훗날 DVD 제품에 몰입할 만큼, 양사가 디지털 광학 시스템에 대한 열의가 있었다는 점을 적어 두고,

○ 1982년 10월 : 소니-필립스 CD가 세상에 소개되었다.
○ 1983년의 어느 날 : SONY CDP-11S가 공개된다. 이후 양태를 보건대 이 모델은 소니의 전략적 배포용이라고 해두는 게 좋겠다.
○ 1983년 : 소니의 개발 키트를 받아 국내 양사가 자사 CDP를 만들기 시작한다.
○ 1983년이거나 늦어도 1984년 중 : 그리하여… 양사는 뚝딱 만든 CDP 제품을 갖고 있었다.
○ 1984년 : 개발 단계 제품과 대량 양산 단계 제품은 성격이 다름. 라인 준비 등 생산체제를 병행 구축하는데 1984년, 1년을 꼬박 소모했다고 추정한다. 굳이 1년을 할당한 것은, 두 회사가 익숙했을 아날로그 회로와는 완전히 다른 <광학+ Digital> 기술이었기 때문에. 아무튼 1984년에 양사는 CDP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 즉, 소비용 제품을 이미 갖고 있었다.
○ 1985년 1월 : 금성사 GCD-606 CDP 후면에 적힌 날짜. 그러면 1984년 말에 이미 판매 중이었거나 최소한 판매 대기 상태였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 1985년 4월 : 논리상 그 이전에 크로이처 브랜드 K-800/K-700의 홍보를 시작 = 그 이전에 CD-100과 기타 크로이처 소속 제품이 확보된 상태. (금성사 홍보는 미 확인)
○ 1985년 7월 : 김동오 님의 삼성전자 CD-100 트랜스포트에 붙은 스티커의 날짜. 양산을 준비하고 홍보를 시작한 지 몇 달 후에 소비된 제품.

이상의 시간 흐름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SONY CDP-11S(1983) + 양사 CDP 개발 시작 → 두 회사 공히, 늦어도 1984년 말까지 CDP 및 관련 제품 구비 + 양산 체제 구축 → 1984년말~1985년초에 본격적인 국내 유통 + 해외 수출.

종합하면, 1984년이 국산 CDP 세상 기점.

(내용 추가) 국내 극초기 CDP에 관련된 MAP.

* 관련 글 : 금성사 GCD-600 CDP와 GSE-600 평면형 스피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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